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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DAY36_말도 안 되게 큰 절벽, 자이언 캐년!

세계일주 시작, 45일간의 미국 로드 트립

by 현존

241205


브라이스 캐년을 떠나 도착한 곳은 자이언 캐년이었다.
이름부터 강렬한 이곳은 미국 유타주에 위치한 자이언 캐년 국립공원(Zion National Park).
거대한 협곡과 붉은 사암 절벽, 에메랄드 빛 강줄기가 어우러진 이곳은 미국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풍경을 자랑하는 곳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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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산맥 남서쪽에서 이어진 이 지형은 빙하와 강, 바람이 오랜 세월 빚어낸 걸작이라고 한다.

‘Zion’이라는 단어에서 왠지 모르게 ‘Giant’가 떠올랐다.

이름을 듣는 순간부터, 이곳은 뭔가 정말 거대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적중했다.
말 그대로, 거대한 절벽이 우리를 와락 반겼다. 말이 필요 없었다. 숨이 턱 막히는 압도감.


우리는 이번 로드트립에서 요세미티, 글레이셔, 옐로스톤 등 이름만 들어도 벅찬 국립공원들을 여행해왔다.
각각의 국립공원이 보여주는 얼굴은 완전히 달랐고, 그 규모는 믿기지 않을 만큼 컸다.
특히 요세미티에서 본 수직의 절벽들 앞에서는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실감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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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자이언 캐년의 절벽들은 마치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너가 본 절벽 중에, 내가 제일 크지?”
이건 그냥 절벽이 아니라, 거의 장벽 수준이었다.
말도 안될 정도로 크고 높고, 거대했다.


편집을 위해 여행 영상을 다시 보면서도 도무지 자막으로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몰랐다.
“크다”, 그 말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건 정말 직접 봐야 한다.
미국 국립공원은... 인생을 걸어도 아깝지 않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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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 캐년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가 바로 "자이언-마운트 카멜 터널(Zion-Mount Carmel Tunnel)"이다.
1930년에 개통된 이 터널은 무려 1.8km 길이로, 100년 가까이 된 역사적인 구조물이다.
그 시절, 이렇게 단단하고 거대한 암벽을 뚫어 터널을 만들다니... 미국은 역시 스케일이 다르다.

이 터널을 지날 때 RV나 캠핑카는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좁은 터널에서 양방향 통행은 어려운 구조라, 큰 차량들은 따로 시간을 잡아야 한다고.
우리는 일반 차량이었기에 무사히 진입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안, 중간 중간 작은 창문(viewpoint)이 있다.
그 창들 사이로 스며드는 자연광은 정말 신비롭다.
짧은 시간 지루할 틈 없이, 오히려 그 짧은 빛의 순간들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구불구불한 절벽 도로가 시작되었다.
어찌나 굽이굽이 돌아가는지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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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방금 지나온 터널에 작디작은 창문 하나가 보였다.

안에서 볼 땐 그토록 커 보이던 창이, 바깥에서 보니 손톱만 한 점이었다.
이럴 때마다 ‘크다’는 것과 ‘작다’는 것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자이언 캐년은, 아니 미국의 국립공원들은 우리에게 자꾸 그런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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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자이언 캐년 웰컴센터 근처에 도착하게 된다.
그 앞에는 "버진 강(Virgin River)"이 흐르고 있었다.
백짝꿍은 세수를 하고, 물맛을 보더니, 뜬금없이 말했다.
“짜!”
"에이~ 어떻게 강물이 짜~ 그거 오줌 아니야?!"
둘 다 웃음이 터졌다. 이상하게 기억에 오래 남을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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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는 마을 쪽으로 향하다 멋진 카페 하나를 발견했다.
이름부터 감성 폭발인 "Feel Love Coffee".
인테리어도 세련되고, 커피 맛도 훌륭했다.
자이언 캐년에 간다면, 이 카페는 꼭 추천하고 싶다.
우리는 자이언에 머무는 동안 이곳을 무려 3번이나 방문했다.


그날 카페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요 며칠 동안 영하 10도에서 차박한 얘기를 꺼냈다.
캠핑카도 아니고 일반 차량에서, 그것도 이불 두 개 덮고 잤으니...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다행히 여행 일정이 예상보다 여유로웠고, 우리는 자이언 아래의 허리케인(Hurricane)이라는 마을에
에어비엔비를 즉흥적으로 4일 예약했다.
숙소 예약 확인 버튼을 누른 순간, 그 자체로 힐링이었다.
이제 당분간 차박 안 해도 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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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향하는 길, 해가 지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은 말 그대로 Golden Hour.
하늘은 따뜻한 주황빛으로 물들었고,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golden hour - JVKE’를 들으며 숙소로 향했다.
하늘이 우리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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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는 사진보다 훨씬 좋았다.
깔끔하고 아늑하고, 심지어 거실보다 욕실이 더 큰 독특한 구조.

동네 마트에서 질 좋은 돼지고기를 사서 구웠고,
동네 마트에서 우연히 발견한 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였다.
스팸도 구웠고, 마무리는 역시 기네스 맥주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자이언 캐년에서의 가장 평범하고 가장 특별한 저녁이었다.


백김밥로드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https://youtu.be/jDefN8B7kGw?si=7xcchSYHh3PKG4J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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