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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DAY37~39_로드트립 모르겠고 일단 쉬자!

세계일주 시작, 45일간의 미국 로드 트립

by 현존

2024년 12월 6일 금요일

미국 허리케인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아침이다.

이름만큼은 거칠지만, 허리케인은 자이언 캐년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자리한 조용한 작은 마을이다.


간만에 푹신한 침대에서 깊이 잠들고 나니, 아침 겸 점심으로 뭘 먹을까 즐거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오늘의 메뉴는 내가 자신 있게 내세우는 알리오올리오 파스타다.
내 레시피에는 마늘, 올리브유, 양송이버섯, 레드페퍼(+비건 다시다)가 전부다.

이건 정말 나만 알고 있기엔 아까운 맛이라, 유튜브에 올려둔 영상을 꼭 참고해 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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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앞마당에는 다양한 허브가 자라고 있었는데, 호스트가 필요한 만큼 따다 써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민트를 조금 따다가 파스타 위에 살포시 올려 데코까지 완성했다.
이날 먹은 알리오올리오는 정말 역대급이었다. 그 어떤 레스토랑보다도 더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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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든든히 먹고는 자이언 캐년 근처의 카페로 향했다. 거대한 붉은 절벽 아래에 자리한 야외 테이블에 앉아, 따뜻한 라떼를 마셨다. 백짝꿍은 빵이 먹고 싶다며 맞은편 빵집에서 추천받은 빵을 포장해왔다.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 감탄할 만큼, 윤기 나는 설탕 코팅의 그 빵은 정말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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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기울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원석을 판매하는 작은 상점에 들렀다. 상점 앞에 위치한 절벽이 마치 누군가의 조각 작품처럼 아름다워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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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감탄했던 Golden Hour의 노을, 오늘은 어제보다 더 황홀했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대지만 노을은 매번 다르게 스며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노을을 보기 위해 매일 일몰 시간에 맞춰 일부러 차를 타고 나가곤 했다.

노을을 보며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설명하기 어려운 가슴 벅참이 찾아왔다. 하루가 이렇게 천천히 흐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를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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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어제 구운 고기를 대신해 수육을 준비했다. 수육용 고기가 아니었지만, 그냥 돼지고기를 삶아 보았는데 의외로 기름기 없는 담백함이 일품이었다.
함께 곁들인 냉모밀은 그야말로 환상의 조합이었다.

여정 속에서 맞이한 따뜻한 밥상이라 더 특별하게 느껴졌고, 오래 기억될 것 같다.


2024년 12월 7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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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전날 푹 끓여둔 들깨 미역국에, 조금 남은 김치찌개, 샐러드까지 곁들여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식사를 마치고는 허리케인 마을로 향했다.

오늘 해야 할 중요한 일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몇주 전, 보스턴으로 향하던 도중 경찰에게 과속으로 걸려 스피딩 티켓을 받았다. 미국은 주마다 법원이 다르게 운영되기 때문에, 내가 캘리포니아에 살아도 보스턴에서 걸린 과속 위반은 보스턴의 법원 관할이다.

현장 출석을 하거나, 우편으로 사유서를 보내야 한다. 우리는 당연히 후자를 선택했다.

백짝꿍은 10마일 초과한 건 맞다며, 미련 없이 벌금을 내겠다고 했다. 금액은 약 35만원 정도였다. 미국 여행 중 벌금까지 내보는 건 처음이라 웃음이 났지만, 우편을 부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후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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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로 집 근처에서 유난히 붐비는 카페에 들렀다. 들어서자마자 왜 사람들이 몰리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카페 뒤편으로 펼쳐진 광활한 풍경이 울타리 하나 없이 탁 트여 있었고, 음료와 디저트도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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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인상 깊었던 건 이곳의 참새들이었다. 손님들이 흘리고 간 빵 부스러기를 주워 먹느라 바쁜 이 참새들은 하나같이 통통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한참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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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서는 드디어 기대하던 바베큐를 준비했다. 요리는 내가 더 자신 있지만, 바베큐는 백짝꿍이 최고다.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는 것까지 백짝꿍이 전담했다.
그렇게 구운 소고기와 삼겹살은 정말 완벽하게 익어 있었다. 특히 삼겹살은 4달러밖에 안 했고, 스테이크도 시즈닝까지 되어 있는데 11달러 정도였다.
이런 식료품 물가라면 매일 고기를 먹고 싶을 지경이다.

거기에 백짝꿍 몰래 준비한 불닭까지 더하니, 그야말로 감동적인 만찬이 완성되었다.


2024년 12월 8일 일요일

다음날 아침, 조금 특별한 카페를 찾아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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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내내 차도, 사람도 없어서 ‘정말 이런 곳에 카페가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분위기 좋고, 커피와 샌드위치까지 훌륭한 인기 카페였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 놀랐지만, 모두 이 조용하고 감성적인 공간에 이끌려 온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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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서는 알리오올리오 파스타를 한 번 더 해먹었다.
내일이면 다시 본격적인 로드트립이 시작된다.
그래서 이날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 계획도 없이 하루 종일 푹 쉬었다.

느긋하고 조용한 하루, 허리케인에서의 마지막 날이 그렇게 저물어갔다.



백김밥로드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https://youtu.be/d3yMO9dxyDU?si=ubj4LjMDNM5D2p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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