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걸, 호프자런, 유시민 작가 추천
호프자런(Hope Jahren)의 <랩걸(Lab Girl)>
호프자런은 노르웨이 과학예술아카데미 회원이며,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에서 지구진화 및 역학센터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2016년 타임이 선정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이름을 올렸으며, 풀브라이트상을 세 번 수상한 유일한 여성 과학자이다. 2005년에는 젊고 뛰어난 지구물리학자에게 수여하는 제임스 매클웨인 메달을 받기도 했다.
<랩걸>은 여성과학자로서의 호프자런의 삶을 식물의 생애와 성장에 빗대어 쓴 자전적 스토리다.
책은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뿌리와 이파리에서는 자런의 어린 시절과 과학자로서 막 발돋음을 시작하기까지의 이야기, 2부 나무와 옹이는 연구자로서의 그의 삶과 도전들, 여성이라는 편견에 맞서면서도 묵묵히 연구를 이어가는 이야기, 3부 꽃과 열매에서는 결혼과 출산, 가족과 그의 곁에서 함께 연구를 이어가는 빌과 동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가 들려주는 식물의 생태와 생존방식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과 식물의 삶을 비교하기도 하고, 삶의 의미에 관해 돌아보게 된다.
호프자런은 팽나무씨에서 오팔이 함유되어 있다는 걸 발견하며 드디어 독립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된(과학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이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국립 과학 재단에서 연구 자금도 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팽나무를 대상으로 한 후속 연구에서 실패한다. 모든 조건이 맞았음에도 그 해 여름 팽나무 중 어느 것도,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지 않았던 것이다.
이 때의 연구 실패로 자런은 식물을 새로운 방법으로 연구하기로 하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 랩걸, 112p-
- 랩걸, 113p-
개인적으로는 ‘식물의 입장에서 연구’를 하겠다고 결심한 자런의 연구 방법이 생명과 지구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헀고, 이후 그녀의 연구 방향과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 랩걸, 114p-
연구비를 계속 고민해야 하는 상황, 여기저기서 얻고 주운 장비로 꾸며야 하는 실험실,
자런의 곁에서 그녀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함께 연구해주는 빌에게 충분한 급여를 주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녀는 빌과 함께 연구를 이어간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연약한 씨앗도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모습과 속도를 달리하며 하나의 식물로 성장한다. 그녀 또한 어려운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과학자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호프 자런은 2016년 미국 PBS News와의 인터뷰(The secret life of plants — and ‘Lab Girl’ author Hope Jahren)에서 자신을 사로잡은 것은 궁극적으로 식물 생명이라는 자연세계라고 말했다.
"지구상에서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그녀의 연구는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식물의 생명력과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랩걸> 책 곳곳에 연구자로서의 그녀의 태도와 식물을 통한 그녀의 배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문장들이 많다.
- 랩걸, 49p-
- 랩걸, 366p-
과학을 연구하는 일은 특히, 식물이나 동물처럼 생명이 있는 개체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연구는 대상에 대한 사랑과 존중, 긴 시간을 묵묵히 견뎌낼 수 있는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오랜 시간 한 분야를 깊이 연구한 사람의 통찰은 거기에서 비롯될 것이다.
4억 만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생명체를 연구할수록 저자는 생명의 의미, 진정한 생명력과 지속가능한 지구에 대해 더 깊이 뼈아프게 느꼈을 것이다. 이후에 그녀가 쓴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는 어쩌면 연구자로서의 그녀의 삶에서 필연적인 후속작일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식물은 움직일 수 없다. 마음대로 옮겨 다닐 수 없으므로 능동적으로 자신이 성장할 환경과 조건을 선택할 수도 없다. 하지만 하나의 작은 씨앗은 기다릴 줄 안다.
긴 시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절대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 기회를 기다린다’.
긴 기다림의 끝에 ‘적절한 장소에서 적절한 조건을 만나면 몸을 펼치고 마침내 원래 되려고 의도했던 그 존재’로 성장한다.
"지구상에서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호프 자런의 질문에 대한 답은 여기에 있는 건 아닐까?
- 랩걸, 5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