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척, 모르는 척, 있는 척, 가진 척, 없는 척 등 나의 현재 상태와는 다른 모습을 외부로 보이려는 행태들이 종종 보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내적 상태와 외부로 드러내는 표현이 일치할 때 안정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일상에서 내/외부의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나를 속이는 경우가 많은 거죠.
업무 현장에서 확실히 알지 못하는 사안을 다루면서도 아는 것처럼 설명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회의 자리에서 ‘잘 모르겠다’라는 말을 쉽게 꺼내기 어려운 이유는 나에 대한 평가와 신뢰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머릿속으로 지식을 정리하고 언어를 선택하며 표정과 억양을 조정하는 일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실제로는 그저 대화를 하는 것 같지만, 내부에서는 지속적인 조율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조율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인지적 부담을 발생시킵니다. 단시간에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반복될수록 에너지 소모가 누적됩니다. 사람들은 이 간극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들이게 되고, 그 결과 하루가 끝날 무렵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경험합니다.
‘척’은 작은 거짓말이나 허세로만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회적 장치로서 역할을 합니다.
낯선 사람과의 첫 만남에서 친절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일정 수준의 친근감을 연출하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이런 연출은 갈등을 줄이고 관계의 틀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한 조직 안에서 구성원이 일정한 능숙함을 표현하는 것은 협업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수단이 됩니다.
문제는 이 행위가 반복되고, 그 범위가 넓어질 때 발생합니다. 사람들은 직장에서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관계에서도 비슷한 패턴을 이어갑니다. 피곤해도 괜찮은 척을 하고, 불편해도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때로는 마음에 없는 호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선택은 짧은 순간의 갈등을 줄여주지만, 장기적으로는 자기 내부의 상태를 은폐하는 습관을 강화합니다. 그 결과 본인의 실제 감정과 행동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이는 일상의 피로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이게 누적되면 홧병이 되는건데요, 결국 사회적으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려 눈치보다가 속이 곪아가는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은 해본 경험이 있을거에요.
삶의 하루는 크고 작은 역할 전환으로 구성됩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회사원으로서, 대표로서 일정한 태도를 준비하고, 동료와 대화하며 자연스러운 친근함을 유지합니다. 퇴근 후에는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 다른 형태의 표현을 사용합니다. 사회 관계 속에서 내 역할과 자아도 그 때 그 때 마다 변화하는거죠.
이때 각 상황에서 필요한 ‘척’의 양은 다르지만, 모두 주의력과 감정 조절이 필요합니다. 특히 힘든 상황에서도 괜찮은 모습을 유지하려는 시도는 심리적 자원을 빠르게 고갈시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채, 매 순간 작은 연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연속된 조정이 쌓이면 본질적인 과제나 자기 회복에 투입할 수 있는 에너지가 줄어듭니다.
결국 문제는 ‘척’ 자체가 아니라 그 빈도와 강도에 있습니다. 최소한의 연출은 사회생활의 윤활유로 기능하지만, 불필요하게 과도한 연출은 자원을 소모하는 구조로 변합니다. 자신이 어디에서, 얼마만큼의 ‘척’을 사용하는지 인식하는 일은 삶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출발점이 됩니다.
피로하죠. 피로 사회 입니다. 내 감정과 심리를 좀 더 드러내고 표현해도 삶이 크게 힘들어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내 내면의 힘듦은 조금 더 나아질 수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