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운이지만 굳이 따져보자면
자, 외국에 나가서 일하면서 공부도 하고싶었고, 오페어를 하기로 결정하면 타임라인이 나에게 맞는지, 내가 요구하는 조건을 전부 제출할 수 있는 지 따져보아야 한다. 오페어 에이전시는 대부분 정해진 출발 날짜가 있고, 준비와 매칭과 비자가 다 끝나면 가장 가까운 날짜에 출국하게 된다. 보통 한 3개월이면 된다고 하는 것 같은데, 나는 넉넉하게 6개월 정도로 잡았던 것 같다. 후기는 찾으면 많이 나오고, 에이전시에서 굉장히 디테일하게 목록을 주기 때문에 크게 어렵진 않지만 몇몇 부분이 막막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내가 당황했던 포인트나 조금 큰 그림으로 보면서 느낀 점을 위주로 다루고자 한다.
1. 프로세스 시작할 초기 영어 진단 전화
가장 초반에 에이전시에서는 영어 실력을 보고 진단해야 한다며 전화 평가?를 실시한다. 나는 직장에서 일하다가 짬내어 받았는데, 결과 이메일이 참담했다. 10점 만점에 4점인가를 주면서, 일상생활 대화하기 어려운 정도라고 했던 것 같다. 영어를 원어민 처럼 잘하는 수준은 아니었으나 못한다는 소리도 못 들어봐서 나는 충격에 빠졌다. 에이전시는 이정도면 그냥 시작할 수 있어요~ 하면서 넘어가기는 했는데 아니 영어를 굉장히 잘해야되는데 내가 말도 안되는 수준에서 잘못 시작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전화 결과는 별로 신경쓰지 마시라. 아예 에이전시에서 시작을 못하겠어요 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이 결과는 향후에 그 어떤 영향도 없다. 그냥 망치면 기분이 나쁠 뿐. 웃긴게 나중에 자기소개 비디오 만들었을 때에는 에이전시에서 영어를 잘해서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2. 자기소개 비디오
서류에는 자기 소개서도 있고, 경력/자격 증명이나 추천서도 있지만, 아마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소개 비디오 인 듯 싶다. 영상편집에 일가견이 있다면 아주 좋은 기회이다. 명심할 것은 본인이 직접 등장하여 말하고 행동하는 것과 어필하고 싶은 재주/특징을 빠르고 간결하게 전달하는 점에 있다. 호스트패밀리는 매칭 플랫폼에서 수많은 지원자를 본다. 자신의 아이를 돌보고 함께 집에서 1년을 함께 살 사람인데, 그 또한 얼마나 막막하고 부담스러운 결정이겠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스토리보드를 짜서 4-5개의 주제로 동영상을 구성하고, 내가 직접 등장해서 소개하고 인사하기 + 내 음성으로 내래이션하기 + 아이들과 함께하는 사진과 영상넣기를 큰 틀로 했다. 지금도 보면 손발이 오그라든다.
3. 내가 원하는 건 뭐냐
보통 매칭이 되는 것 자체에 몰두해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은 놓치기 쉽다. 하지만 호스트패밀리는 말 그대로 호스트이기 때문에, 나의 가 거주할 곳이면서, 약간의 보호자 역할에다가 내 고용주가 될 사람들이기도 하다. 본인이 원하는 어떤 일련의 조건들을 정해두고, 인터뷰 요청이 오는 것에서 고려하라고 권해주고 싶다. 이 정도 리스트는 염두해 두고 그 안에서 본인이 얼마나 플렉서블하게 수용할 수 있는지 생각해 두어라. 내 목록에서 너무 벗어나는 가족이라면 과감히 인터뷰 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 살고 싶은 지역 혹은 지역적 특징: 도시/교외, 서부/중부/동부 혹은 북부/남부, 지역 특정 종교 및 정치/문화적 특성 (이게 안 맞으면 진짜 살기 힘들다)
- 내가 몇 번째 오페어인지, 현재 오페어가 있는 지: 현재 있다면 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오페어 경험이 많다면 이는 장점/단점의 양면의 날이다. 이전 오페어가 이런 저런 것을 제기해서 복지가 더 많이 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제도를 잘 알아서 loophole을 이용해 부려먹을 수도 있다. 이전 오페어가 잘 했다면 내가 뚫고 들어가기 어려울 것이고, 그 반대라면 내가 돋보일 수도 있다.
- 아이들의 연령그룹/ 아이들 수
- 가정의 정치/종교/문화적 특성: 정치/종교/문화를 호스트나 오페어 모두 서로에게 강요할 수 없다. 하지만 서로 각자가 믿는 대로 사는 것을 존중해 줄 수는 있어야 한다. 특히 먹을 게 어렵다. 예를 들어 한 쪽이 비건/베지테리언이고 다른 한 쪽이 아닌 경우, 혹은 종교적 이유로 특정 음식을 피해야 하는 경우 쌍방이 괴로울 수 있다.
- 대략의 근무스케쥴 플랜: 집 마다 원하는 근무시간/스케쥴 방식이 다르다. 부모가 교대직업 (간호사, 소방관 등등)인 경우 하루 종일이나 밤에 일하게 될 수도 있다. 어느 집은 정해진 스케쥴로 계속 가는 반면, 어느 집은 2주에 한번 씩 새로운 스케쥴을 내어준다. 만약 매 주 새로운 스케쥴을 주는 집이라면, 내가 친구와 약속을 잡거나 수업을 가거나 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닌다면 하루의 중간이 텅 빌 수도 있다. 풀타임이 다 필요한 경우도 있고, 남는 시간은 그냥 자유시간인 경우도 있다.
- 가정에서 특히 원하는 점: 원하는 강조점이 가정마다 다르다. 부모와 함께 집에서 아이들을 볼 수 있는지, 아이들을 부모가 일하는 동안 떨어뜨려놓아 주길 바라는 지, 아이가 장애가 있는지, 특정 언어/문화/종교를 수용하거나 가르칠 수 있는지, 수영을 할 줄 아는지 등등. 이는 내 가치를 높일 강점도 되므로, 미리 알아놨다가 인터뷰시 이 점을 어필할 수도 있다.
- 내가 가지고 있는 강점: 특정 언어, 악기연주, 스포츠 등에 능통하여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면 호스트 패밀리에게 큰 매력포인트로 작용할 수 있다.
4. 인터뷰시 대화 이외의 요소도 준비해 두면 좋다.
- 인터뷰 요청이 오면, 수락 후 화상통화 형식으로 하게 된다. 사실 생각해 보면, 굉장히.. 어색한.. 과정이다. 일반 영어를 꽤 능숙하게 하더라도, 통화로 듣는 영어는 이상하게 알아듣기가 힘들고 상대방도 나를 잘 못 알아듣는다. 어린 아이들이라도 만난다고 치면, 상황은 더 정신없어진다. 첫번째 대화에서는 부부와 통화했고, 나에게 다음 통화에서 아이들과도 이야기해 볼 수 있냐고 청했다. 아이들은 1살 반과 3살 반.. 어차피 서로 말은 안 통할 것이 뻔했다 (0-5살짜리 애들은 봐오던 애들이 아니라면 한국말로도 알아듣기가 어렵다). 나는 손인형(코끼리였나 뭐였더라)을 들고 카메라를 꽉 채운 채 전화를 받았고, 코끼리로서(?) 대화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코끼리가 나와 이야기하자 흥미있고 즐거워했고, 그 이후로는 무슨 대화를 했나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중에
살면서 이야기했는데, 내 호스트패밀리는 손인형이 등장한 순간부터 이 사람이다 하고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 아이들을 이렇게 잘 알고 미리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되었다고 느꼈다고.
이러니저러니 해봤자, 사실은 운이다. 찾아보면 매칭이 오래 걸려서 인터뷰를 엄청 많이 해본 오페어들도 많다. 오페어도 호스트 패밀리도, 처우/조건이 좋은 쪽은 금방 팔리고, 내가 원하는 것에 100% 부합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1년이 지나고 같은 가족과 연장하는 경우도 있고, 2년 째에 다른 가족을 찾아 매칭을 다시 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운이 정말로 좋아서, 초반에 2개의 인터뷰 요청이 왔고, 그 중에 인터뷰한 후 바로 매칭이 되었다. 동북부 대도시로 가고 싶었는데 생각해보면 도시라는 것 외에는 아무 이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자라면서 봐 온 영화/드라마의 영향인듯..). 샌프란시스코 베이에리아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을 때, 이 지역 작은 도시 이름으로 떴기 때문에, 나는 여기가 어딘지도 몰랐다 (외국인이 서울은 알지만 반포동은 잘 모르듯이). 그 유명한 실리콘벨리에 부유한 동네인지도 몰랐다. 그냥 서부에, 오 샌프란시스코(들어본 대도시) 근처구나. 주위에 큰 회사들도 많고 학교도 많으니 뭔가 할 건 있겠구나. 아이들 연령이 내 최애였고 특징적인 것을 바라거나 강조하지 않기에 그저 괜찮아서 결정했다.
막상 오페어가 되어 와 보니 온갖 신기한 경우들이 즐비했다. 정말 언럭키한 경우, 기상천외한 오페어/호스트패밀리 이야기를 다 들어봤다 (이 이야기도 풀어보면 재미있겠다). 이 글의 3번 항목은 그래서 나왔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이런 요소도 고려해야겠구나 정도 생각해서 스스로 필터를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페어 관련 궁금하신 분들께서 질문을 주시곤 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채널을 개설해보았습니다.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다면 편하게 이야기 나누어 보아요. - 하이데어 멘토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