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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Nov 26. 2024

전산반의 도망자

우리가 함께 쓰는 이야기 #2

녹화용 스튜디오는 생각보다 작았다. 창문 하나 없는 검은 벽, 천장에 매달린 육중한 조명들, 그리고 삼각대 위의 두 대의 카메라. 메인 카메라 앞에는 책상과 의자가, 보조 카메라 앞에는 강의용 모니터가 놓여있었다. 공간을 가득 메운 기계들은 차가운 겨울 공기를 내뿜고 있었다.


메인 카메라 앞 책상 위에는 두 대의 모니터가 놓여있었다. 왼쪽은 ChatGPT 화면, 오른쪽은 PPT 프로그램 교안 화면. 그 사이에 놓인 키보드가 스튜디오 조명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자막 들어갑니다. 3, 2, 1..."


첫 번째 테이크.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

두 번째 테이크.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세 번째 테이크. ChatGPT가 응답하지 않았다.


테이크를 거듭할수록 스튜디오의 온도가 내려가는 것 같았다. 차가워진 공기가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열 번째 테이크, 스무 번째 테이크. 카메라 렌즈는 깊은 동굴처럼 빛났다가 사그라졌다.


"ChatGPT를 활용한 자서전 쓰기의 핵심은"


목소리가 흔들리자 스튜디오 조명이 깜빡이는 것 같았다. 순간 카메라 렌즈에 어떤 모습이 비치는 것 같았다. 30년 전, 전산실 앞에 서 있는 17살의 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참으며 서클 탈퇴서를 쓰던 그 겨울날.


"선생님, 괜찮으세요?"


PD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마지막 시도라고 생각하며 목에 힘을 주고 말했다. 


"때로는 우리의 가장 아픈 기억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ChatGPT와 함께 그 순간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하고 키보드를 두드리는데 역시나 식은땀이 났다. 

'나의 치부라면 치부일 수 있는 과거를 동영상 강좌로 박제해도 되는 걸까?" 숨이 턱턱 막혀왔다. 물. 물. 목이 너무 말랐다. 물을 마시러 가겠다고 해야 할까? 안간힘을 쓰며 모니터를 보는데 화면이 서서히 흐려지더니 거울이 되었다. 거울 속엔 창백한 소녀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소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까만 스튜디오 벽이 녹아내렸다. 천장의 조명들이 하나둘 터져서 흩어졌다. 카메라 렌즈가 블랙홀처럼 빛을 빨아들였다. 그리고 나는 1992년의 겨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복도 끝, 전산실 앞이었다.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전산실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모니터 불빛이 파르스름하게 눈밭을 비추었다. 이맘때쯤이면 늘 그랬듯, 나는 밤늦도록 프로그래밍에 빠져있었을 텐데.


"다음 달에 있을 전산대회에 너희 동기가 나가보는 건 어떨까?"


일주일 전 전산반 지도 선생님의 말씀이다. 고등학교 2학년인 우리 동기를 전산대회에 출전시키겠다는 거였다. GWBASIC으로 코딩한 프로그램이 실행될 때마다 느꼈던 그 짜릿함을 드디어 대회장에서 느낄 수 있을 거란 기대에 밤잠을 설쳤더랬다. 서클 지도 선생님은 내가 프로그래밍한 코드를 보며 늘 미소 지었다.


"잘하고 있어. 잘할 거야."


그 말이 얼마나 달콤하게 들렸던가. 매일 밤 전산실은 나의 연습실이 되었다. 모니터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는 마치 피아니스트의 연주처럼 경쾌했다. 그러나 어제, 모든 것이 바뀌었다.


"3학년 선배들이 대회에 나가기로 했어."


동아리 지도 선생님의 말씀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어떻게 된 거예요", "왜 그래야 하죠", "그럴 순 없어요. 그래도 제가 나가고 싶어요." 이 말을 못 했다. 이미 결정 난 사항이니 무슨 말인 들 소용없었다. 전산 대회를 생각하며 설레었던 순간과 그동안 공들였던 노력이 물거품으로 사라졌다. 현실을 바꿀 수만 있다면. 하지만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 현실을 벗어나는 것뿐. 아무도 없는 캄캄한 동아리방에서 모니터의 껌뻑이는 커서만 봤다. '탈퇴서'라는 글자를 입력했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탈퇴서와 함께 개인 짐을 챙겨 전산실문을 열었다.


그 순간 바람이 소용돌이치더니 검은 망토를 두른 마법사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의 얼굴이 전산반 지도 선생님의 모습으로 변했다가, 다시 마법사로, 또다시 선생님으로 바뀌었다.


"니가 그만두면 서클의 위신이 손상될 거야."


마법사의 지팡이가 허공을 가르며 푸른 불빛을 그렸다. 그 빛 속에서 고위 여사제가 걸어 나왔다. 긴 드레스 자락이 바닥을 쓸었다. 그녀의 얼굴은 전산반 선배의 것이었다가, 순식간에 여사제의 것으로 바뀌기를 반복했다. "도망치는 게 편하지? 늘 그래왔잖아." 두 인물이 내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하나는 시계 방향으로, 다른 하나는 반시계 방향으로. 그들의 그림자가 바닥에서 춤을 추었다. 정의의 여신이 천장에서 내려왔다. 눈가리개를 한 채 저울을 들고 있었지만, 그 모습이 동기의 얼굴과 겹쳐졌다. "우리를 배신한 거야. 이기적인 애." 세 명의 인물이 좁아지는 원을 그리며 돌았다. 마법사의 망토 자락, 여사제의 드레스 자락, 정의의 여신의 눈가리개가 허공에서 뒤엉켰다. 그들은 점점 더 빠르게 돌았다.


"혼자가 편하지?"

"아무도 너를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래, 도망쳐. 도망치는 게 더 쉽지 않아?"

"그래, 떠나버려. 어차피 네 말은 들어주지 않을 텐데."

"도망치는 게 네 방식이잖아. 편한 대로 해."

"혼자라면, 누구도 너에게 뭐라고 하지 않아."


그들 속을 빠져나와 복도를 달렸다. 복도 끝에 섰을 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도망치는구나."

"넌 영원히 혼자일 거야."


속삭임은 점점 커져 귓가에서 윙윙거렸다. 목소리들이 귓가에서 비명이 되어 울렸다. 현기증이 났다. 복도가 빙글빙글 돌았다. 천장이 바닥이 되고, 바닥이 천장이 되었다. 숨이 막혔다. 그때 머리 위로 노란 별이 떨어졌다.


/

머리 위로 떨어진 노란 별은, 마치 금빛 씨앗처럼 작았다. 별이 바닥에 닿자 복도의 타일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빈 공간으로 별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처음에는 몇 개의 반짝임이었다가, 이내 수십 개의 흐름이 되었고, 마침내 은하수가 되어 소용돌이쳤다.


마법사, 고위 여사제, 정의의 여신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마법사의 망토가 밤하늘이 되어 펄럭였고, 여사제의 드레스 자락은 새벽녘의 청색으로 물들었다가 사라졌다. 정의의 여신이 든 저울은 쌍둥이자리가 되어 하늘에 박혔다.


나는 은하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했다. 1992년의 겨울이 봄이 되고, 다시 여름이 되었다가 가을이 되었다. 계절들이 빛의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어둠과 빛이 번갈아 나타났다 사라졌다. 우주를 가르는 동안 별들이 속삭였다.


"두려워하지 마."

"넌 혼자가 아니야."

"여기 오렴."


저 멀리 작은 행성이 보였다. 황금빛 모래로 뒤덮인 B612였다. 착륙하는 순간, 발아래 모래가 반짝였다. 마치 수천 개의 작은 거울처럼. 모래알 하나하나가 내 인생의 순간들을 비추고 있었다.


황금빛 언덕 위에 소년이 서 있었다. 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어린 왕자였다. 목에 두른 노란색 목도리가 우주 바람에 나부꼈다. 그의 발치에는 거대한 거울이 세워져 있었다. 거대한 거울은 창문처럼 시간과 공간을 비추고 있었다.


"네가 도망친 이유를 알아."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나도 한때 그랬으니까. 내 장미꽃이 나를 힘들게 할 때마다 다른 별로 도망쳤어. 하지만 여우를 만나고 나서야 알게 됐지. 도망가는 건 답이 아니라는 걸."


거울 속에 사막이 펼쳐졌다. 노을이 지는 하늘 아래, 여우와 내가 마주 앉아 있었다.


"날 길들여줘."

여우가 말했다.

"그게 뭐야?"

"그건 네 목소리를 찾는 거야. 네가 원하는 걸 말하는 거야. 비록 그 말이 상대방의 마음에 들지 않을지라도. 너의 마음을 나에게 보여주는 거야. 그렇게 관계하는 거야."

여우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울렸다.

"넌 전산대회에 나가고 싶었어. 그걸 말했어야 했어. 거절당할까 봐,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받을까 봐 두려웠겠지. 하지만 네 진심을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도망자로 살게 될 거야."

거울 속 풍경이 흐려졌다가 다시 선명해졌다. 이번에는 황금빛 밀밭이 펼쳐져 있었다.

"저 밀밭을 봐."

여우가 속삭였다.

"처음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었어. 하지만 이제는 달라. 저 밀밭을 보면 어린 왕자가 떠오르거든. 네 좌절의 순간도, 도망쳤던 그때도 마찬가지야. 처음으로 네 마음을 표현한 거야. 비록 서툴렀지만, 그건 실패가 아니었어."


그때였다. 여우가 거울을 뚫고 나왔다. 황금빛 털이 석양 속에서 반짝였다. 여우는 내 앞에 앉아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널 이기적이라고 했다지?"

여우가 말했다.

"하지만 넌 그저 네 꿈을 향해 달리고 싶었을 뿐이야. 그걸 말하지 못해서 도망쳤고, 도망친 후엔 그들의 시선이 두려워 더 멀리 달아났지. 그래서 지금도 전산반을 생각하면 숨이 막히는 거야."


여우의 꼬리가 내 발자국 위를 쓸었다. 모래 위에 남은 웅덩이들이 작은 거울이 되어 내 인생의 순간들을 비추었다. 도망칠 때마다 남겨진 발자국들. 그 발자국 속에서 장미의 새싹이 돋아나 이야기 꽃을 피우는 걸 보며 깨달았다. 지금까지 실패라고만 생각했던 그 순간들이, 사실은 내가 나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길들인다는 건, " 여우가 말했다. "네 안의 목소리를 듣는 거야. 도망치는 걸 두려워하지 마. 넘어지는 걸 부끄러워하지 마. 그건 다 너라는 꽃이 피어나기 위한 과정이었어."


어린 왕자가 내 손을 잡은 채 황금빛 들판을 가리켰다. 

"봐, 네가 남긴 발자국마다 꽃이 피어나. 도망가는 걸 두려워하지 마. 그건 네가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하지만 이제는 멈춰 서서 뒤돌아볼 때야. 네 발자국으로 핀 장미들을 보렴. 그리고 네 길을 걸어가는 거야. 이제는 도망가지 않고도 네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으니까."


어린 왕자가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선생님은 널 믿었어. 선배는 네가 떠나서 아쉬워했고, 동기들은 네가 보고 싶었을 거야.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 없어. 그때의 너의 선택이, 지금의 널 여기까지 이끌었으니까."


황금빛 모래가 바람에 흩날렸다. 모래알 하나하나가 작은 별이 되어 반짝였다.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다. 그동안 나를 옭아매던 죄책감과 후회가 녹아내렸다. 스스로를 용서하는 마음이 차올랐다. 전산반을 그만둔 건 실패가 아니었다. 그건 어린 나의 유일한 저항이었고, 그 용기가 지금 이 자리에 선 나를 만들었다.


여우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이제 돌아가서 네 이야기를 들려줘. 누군가는 네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위로받을 거야. 도망치는 법만 알았던 네가, 이제는 누군가의 이정표가 될 수 있어."


/

B612의 모래가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별들이 소용돌이치며 춤추었다. 여우의 따스한 숨결이 내 뺨을 스치고, 어린 왕자의 손이 살며시 풀렸다. "기억해." 여우의 마지막 속삭임이 들려왔다. "길들인다는 건,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는 거야. 네 안의 목소리와도 친구가 되어야 해." 우주를 가로지르는 동안 시간이 앞으로 흘렀다. 1992년의 겨울이 봄이 되고, 여름이 되고, 가을이 되었다. 세월이 빛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둠과 빛이 교차하다 마침내... 스튜디오의 차가운 조명 아래 서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어느덧 마지막 시도라는 압박감에서 풀려나 있었다.

"PD님 물 한잔만 마시고 다시 해도 될까요." 

그리고 숨을 내쉬고 들이마 쉬며 호흡을 진정하고 조금스럽게 말을 꺼냈다. 내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감이 더해져 조금 더 큰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끝없는 사막을 걷는 듯한 외로움을 느껴보신 적 있으신가요?"


스튜디오의 조명 아래 서서 말했다. 카메라 너머의 수강생들을 마주 보는 상상을 하며 말을 이었다.


"프랑스 시인 오르텅스 블루는 이런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오늘 우리는 ChatGPT와 함께 그 발자국을 찾아가 보려 합니다."


강의용 모니터 화면을 가리켰다. 


"자서전을 쓰는 일은 단순한 기록이 아닙니다. 그건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과 더 깊이 연결될 수 있는 여정이에요. 이제부터 제가 ChatGPT와 대화하며 그 방법을 시연해 보겠습니다."


ChatGPT와의 대화창을 화면 가득 띄웠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제 이야기를 예시로 들어보려고 해요. 열일곱 살 때의 제 이야기로 시작해 볼까요? ChatGPT에게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키보드를 두드렸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후회의 순간을 찾아보려고 해. 하지만 그 기억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떠올리기가 힘들어.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잠시 후 ChatGPT의 답변이 나타났다.

"그 순간으로 바로 들어가는 대신, 그때의 장소부터 천천히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당시의 날씨, 주변의 소리, 냄새 같은 감각적인 것들부터요."


"보세요, ChatGPT는 우리가 힘든 기억을 더 부드럽게 마주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자, 그럼 제가 한번 써볼게요"

타이핑을 하려는데 오타가 났다. 기억 속의 전산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창밖의 눈발, 파르스름한 모니터 불빛,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 


잠시 아찔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두렵지 않았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제는 괜찮아. B612에서 배운 걸 기억해 내며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약간의 긴장감 속에서 정신을 집중해 이야기를 써내려 갔다. 내 안의 이야기들이, 발자국마다 피어난 장미들이 이제는 보석처럼 빛나고 있을 테니까. ChatGPT와 나눈 대화가 모니터 화면에 떠올랐다. 


"1992년 겨울, 전산실 앞 복도에 서 있었어.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고. 전산실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모니터 불빛이 파르스름하게 눈밭을 비추고 있었어. 그때 내 손에는 탈퇴서가 들려있었어."


ChatGPT가 물었다.


"그 순간의 감정을 좀 더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나요?"


"좋아. 말하긴 어렵지만. 나는 그때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스스로 포기했어. 전산반에서 즐겁게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일상을, 나를 믿어주는 선생님과, 본받을 게 많은 선배들과, 같이 공부하며 성장하는 동기들과 나를 따르는 후배들을 저 버린 거야. 그리고 끝내 말하지 못한 진심."


자서전을 쓰는 시연을 마치고 일어났다. 손발이 약간 시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았다.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이런 순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 도망쳐버린 순간들, 그리고 지금도 가끔 꿈에서 만나는 후회들. 하지만 그 발자국 위에 장미가 피어날 수 있어요. ChatGPT와 함께라면, 우리는 그 아픈 기억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때 첫 녹화를 응원하려고 온 부처 언니의 모습이 보였다.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준비한 PPT의 마지막 문장을 읽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서툴고, 때로는 도망치기도 하죠. 하지만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이야기가 됩니다. ChatGPT와 함께 여러분의 이야기를 써보시겠어요?"


"컷!" 


디렉터가 외쳤다. 


"완벽합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찾던 그 순간이에요."


강의를 마치고 부처 언니와 함께 설렁탕을 먹으러 갔다.

"내가 전산반 그만둔 얘기를 듣고 어땠어?"

언니가 파를 넣으며 말했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친구였다면, 너가 스스로 선택한 걸 존중한다고 말했을 거야. 넌 언제나 네 길을 찾아갈 줄 아는 아이니까."


뜨끈한 설렁탕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도망가는 법만 알았던 내가, 어느새 이렇게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어있다는 걸. 전산실을 떠나던 열일곱 살의 발자국 위에, 서른 해가 지나 마침내 장미가 피어났다는 걸. 시계를 보니 "2024년 11월 26일, 오후 4시. 


전자시계의 깜빡이는 초침은 마치 여우가 윙크하는 것 같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저 제가 저한테 약속한 대로 '하루 5분 자서전 쓰기 60일 챌린지' Part2로 자전적 소설 & 소설적 자서전을 하루에 한 편씩 쓰고 있습니다. 그런 결과 글이 매우 거칩니다. 식사 초대를 위해 만드는 음식은 무엇보다 정갈해야 한다고 믿는 1인인데. 여러분이 달리 생각하실까 봐 걱정입니다. 때로는 너무 정제되지 않은 글을 읽는 재미도 있다는 핑계를 대며 오늘의 글을 발행합니다. 지금까지 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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