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레스티지고릴라 Jul 20. 2018

에어버스에 '벨루가'가 산다고?

에어버스 기체 부품을 나르는 수송기 '에어버스 벨루가' 이야기

잠실 롯데타워 아쿠아리움에서 만난 벨루가찡

‘벨루가(Beluga)’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물 중 하나다. 물 속에서 빛나는 하얀 몸과 귀엽게 생긴 얼굴, 짧은 팔(?)이 정말이지 너무나 귀엽다.


그런데 이 귀여운 벨루가가 ‘에어버스(Airbus)’에 살고 있다니? 물론 에어버스가 수족관 사업에 뛰어든 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에어버스엔 <벨루가 비행기>가 살고 있다!


출처: airbus.com

짠. 이 비행기가 바로 ‘벨루가 비행기’. 앞으로 톡 튀어나온 이마, 하얗고 거대한 몸이 실제 벨루가와 꼭 닮았다.


ㅡ근데 왜 우린 이런 비행기를 못 탄거죠? 전용기인가요?


보도 듣도 못했던 갑툭튀 녀석, 정체가 무엇인지 그 탄생 비화부터 최근 이슈까지 알아보도록 하자.




우리가 명색이 항공 제작사인데!

벨루가 비행기의 탄생


1970년 출범한 ‘에어버스(Airbus)’는 유럽(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의 여러 항공 제작사들이 협업하여 설립한 컨소시엄 회사였다. 출범 목적은 단 하나, 당시 항공제작업을 독점했던 미국의 ‘보잉(Boeing)’과 ‘맥도널 더글러스(1997년 보잉에 합병)’와 경쟁하기 위함이었다.  


출처: airbus.com

그러나, 설립 초반부터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제조 공장을 어디에 둘 것인가’ 였다. 미국 회사의 독점을 막자는 취지는 같았지만, 각 국가의 이익이 달린 문제이다 보니 서로 자신의 국가에 제조 공장을 두고 싶어 했다.


문제의 해결책은 “나라마다 분담해서 제조 공장을 두자!”


영국은 랜딩기어, 스페인은 꼬리와 도어, 독일은 동체, 프랑스는 노즈와 중앙 섹션을 담당, 각 섹션이 완성되면 프랑스의 ‘툴루즈’나 독일의 ‘함부르크’ 혹은 스페인의 ‘세비야’로 보내 최종 조립을 하는 형태로 국제분업체제가 이루어졌다. (항공기 모델에 따라 차이가 있음)


처음에는 도로를 사용해 부품과 기체 섹션을 수송했지만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대용량 수송기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벨루가’의 탄생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에어버스에는 적당한 대형화물운반용 수송기가 없었다. 적당한 수송기를 찾던 중 보잉에서 제작한 ‘슈퍼 구피(Super Guppies)’가 적합하다고 판단, 약 4대를 가져와 수송기로 사용하게 되었다.


ㅡ보잉과 경쟁한다더니, 에어버스는 비행기 만들려고 보잉을 쓰네?


에어버스의 슈퍼 구피 사용으로 ‘모든 에어버스는 보잉의 날개로 배달된다’는 농담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경쟁사의 비행기를 사용해 비행기를 만든다니… 울며 겨자 먹기로 사용은 했지만, 에어버스는 자존심이 꽤나 상했을 것이다.


출처: airbus.com

그로부터 20년, 에어버스의 사세가 급성장하면서 대형 비행기 제작에 열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노후된 ‘슈퍼 구피’로는 더 이상 생산량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에어버스는 본격적으로 자신들만의 수송기를 제작하기로 결심한다.




다섯 쌍둥이를 소개합니다!

벨루가 A300-600ST


에어버스는 화물 수송기로 개조하기에 적당한 모델을 찾던 중, A300-600의 장거리 버전인 ‘A300-600R’ 여객기를 선택하게 된다.


*A300-600: 에어버스 최초의 광동체 쌍발 엔진 여객기인 A300의 개량형, 중거리 시장을 목표로 개발되었지만 장거리에도 취항시킬 수 있는 융통성을 갖고 있는 다목적 항공기


출처: airbus.com

그렇게 만들어진 최종 모델이 바로 ‘A300-600ST Super Transporter’, 일명 벨루가(Beluga)로 불리는 비행기다(이하 벨루가 ST). 1991년에 ‘제 1호기’를 개조하기 시작해 1994년 9월 13일에 처녀비행을 마친 후, 1995년부터 에어버스의 자회사인 ‘Airbus Transport International(ATI)’에 의해 본격적으로 운행하기 시작했다.


출처: airbus.com

이후 약 1년에 한 대 꼴로 제작되어 (생산이 중단된) 2001년까지 ‘벨루가ST 다섯 쌍둥이’가 완성되었다.


이마에 큼지막하게 박혀있는 숫자는 바로 1~5까지의 이름표랄까? 옹기종기 모여 있으니 꽤 귀여워 보인다. 그런데 외모와는 달리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한다는데… 그 스펙 좀 확인해볼까?


벨루가ST는 유럽 각지에서 만들어진 비행기 기체 및 부품들을 실어 날라야 하기 때문에 다른 항공기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


길이는 56.15m이고, 높이는 17.24m로 건물 7층 정도의 높이라고 보면 된다. 그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아무런 짐을 싣지 않은 상태에서도 86t이나 나간다. 최대 비행거리는 2,779~4,632km로 유럽 국가 간 중·장거리 이동에도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출처: airbus.com

수용 인원은 기장, 부기장, 비행 엔지니어 딱 3명! 동체 지름이 7.1m라고 했을 땐 얼마나 큰지 잘 몰랐는데, 사람이 저렇게나 작게 보이는 걸 보니 대략 감이 온다.


심지어 에어버스 항공기 중 크기로선 상위권이라는 A380의 최대 지름이 약 6.6m인데, 이 화물기가 더 거대하다는 것이 놀랍다. (여담이지만, 웬만한 항공기 기체와 부품은 다 커버 가능하다는 ‘벨루가ST’지만, A380 부품 중 일부는 수용하지 못해 별도로 전용 선박과 차량을 이용하기도 한다.)


크기로 보는 비행기 TOP5+1▶




벨루가는 어떤 일을 할까?

벨루가의 하루


‘유럽 각국의 제조 공장을 돌아다니며 기체와 부품 섹션을 모아 최종 조립 공장(프랑스 툴루즈, 독일 함부르크 등)으로 가져다 주는 일’ 이것이 벨루가의 공식적인 업무다.


유럽 내 공장만 해도 11곳이다 보니 벨루가는 평균 일주일에 60회 이상, 약 5,000~10,000 시간을 비행해야 한다. ex) 에어버스 A350 XWB 1대를 조립하기 위해선 벨루가가 44시간 동안 기체와 부품들을 수송해야 한다.


ㅡ벨루가가 너무 지루해보인다… 어떻게 매번 똑 같은 일만 시키냐…


오직 비행기 생산만을 위해 살신성인하는 벨루가가 안타까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벨루가가 부품만 수송하는 것은 아니다.


출처: wikipedia.org|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인공위성이나 군용 헬기, 탱크를 싣기도 한다. 1997년에는 뉴욕 천체 과학관의 천체 망원경을 수송하기도 했고, 1999년에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던 명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iberty leading the people)’을 일본 국립 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한 수송에 앞장 서기도 했다.(4m에 가까운 그림을 옮겼으며, 벨루가 역사상 가장 긴 항로로 기록돼 있음) 또한, 2006년에는 우주정거장 시설을 미국 케네디센터로 수송하기도 했다.


출처: airbus.com / 2014년

이밖에도, 프랑스 곡예비행팀과 함께 비행을 하는 등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로 변신하기도 한다.




벨루가의 파격적인 변신

벨루가 XL


그동안 열심히 하늘을 난 ‘벨루가’지만, 시대의 흐름은 못 이기는 법

.

최근 몇 년 사이 항공기 기체나 부품이 더욱 대형화되고, 생산량 또한 증가하면서 이를 커버할 만한 더 큰 수송기가 필요해졌다. 이와 맞물려, 이 발표되면서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수송기를 만들어 내야 했다.


출처: airbus.com

2014년 에어버스는 'A330-200F' 화물기를 개조하여 ‘벨루가 XL(Beluga XL; A330-743L)’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ㅡ’벨루가XL’면 크기만 좀 커진 버전 아닐까?


NO. 벨루가 XL만의 독보적인 매력이 추가되었다.


최근, 트위터를 통해 처음으로 ‘벨루가 XL’의 모습이 공개됐는데 이건 정말 전에 없던 특별한 수송기라고 할 수 있다.

.

.

.

.

.

뀨우?

출처: airbus.com

엄청나게 큐티한 벨루가 등장 평소 ‘웃는 고래’로 잘 알려진 벨루가의 형상을 익살스럽게 잘 녹여낸 수송기가 탄생했다. 눈과 코까지 디테일하게 그려넣다니… 


이 디자인은 에어버스 직원의 아이디어였는데, 최종 디자인 후보 6개를 두고 실시한 임직원(2만 명) 투표에서 40%의 지지율로 뽑혔다고 한다.


벨루가 XL 도색 영상 보러가기▶


ㅡ그럼 벨루가 XL의 스펙을 좀 볼까?


출처: airbus.com

길이 63.1m, 높이 18.9m, 지름 8.8m, 최대 이륙 무게 227t로 기존 벨루가와 비교했을 때 길이는 6m, 지름은 1m 정도 더 확장됐고 탑재량은 무려 30%나 늘어 'A350-WXB'의 날개 두 쌍을 한번에 운반할 수 있게 됐다. (기존 벨루가는 A350-WXB 날개 한 쌍만 실을 수 있었음)


또한 최대 비행시간도 늘었다. 53t을 실었을 때 약 4,074km를 운항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 벨루가에 40t을 실었을 때 2,779km까지만 운항할 수 있었던 걸 고려하면 엄청나게 큰 변화다.




벨루가 XL의 비상을 꿈꾸며

To be continue


이제 막 세상에 공개된 ‘벨루가 XL’. 에어버스에 따르면 처녀 비행을 마친 후 2019년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운항한다고 한다.


앞으로 총 5대를 제작할 예정이며, 두 대는 주로 'A350-XWB' 생산용으로 활용되고 나머지 세 대는 기존 벨루가의 퇴역을 대비해서 만들 계획이다. 또한 현재 운항중인 벨루가ST는 벨루가 XL가 제작되는 대로 순차적으로 교체, 2025년까지 전원 퇴역하게 된다고 한다.


출처: airbus.com

벌써부터 귀여운 자체로 하늘을 날 ‘벨루가 XL’를 만날 날이 기다려진다. 언젠가는 직접 리뷰할 날이 오길 바라며 <에어버스의 벨루가 사육기>는 이만 마치도록 하겠다.



재미있는 항공·호텔 이야기를 프레스티지고릴라에서 만나보세요



작가의 이전글 MUJI와 IKEA, 호텔을 만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