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을 기다리며...
오랜만에 출근을 했다.
코로나 19의 시작으로 휴업이 결정되었고 일상도 변했다. 방학처럼 지내면 되겠지 했는데 외출도 여행도 외식까지도 제한되니 창살 없는 감옥이 따로 없다. 집에는 틀어 박혀 있어야 하는 아이들이 측은하면서도 사소한 실수에 화가 불쑥불쑥 올라오는 나날이다. 집에만 있어도 빨래는 여전히 많고, 삼시 세 끼에 간식까지 삼 남매 먹성에 부응하려니 '여유'란 누구 집 개 이름인가 싶네.
그런 와중에 휴업 중 출근일이 참으로 반가웠다.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러 간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사회적으로도 거리가 필요한 시기지만 가족 간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 공간과 내 시간 없이 12월 방학하면서부터 3월 중순이 된 지금까지 종일 붙어 있으니 서로가 고역이다.
출근을 한다고 생각하니 전날 괜히 바빠졌다. 빨래를 해도 꺼내지 않고 이틀 삼일씩 미루다 결국 다시 빠는 나날들이었지만 빨래를 착착 널고, 건조기의 옷도 갰다. 내일 애들 먹을 것도 해놔야지 싶고 집도 대충은 치워야 할 것 같다. 6시에 알람을 맞추고 샤워를 하고 물기를 닦으며 주방을 휙 둘러보는데 설거지가 되어 있는 개수대와 미리 준비된 아침 거리에 기분이 좋다.
"엄마 다녀올게~알아서 먹고 알아서 공부하고 알아서 놀아. 다들 잘 부탁해~!!!"
어수선하고 다소 지저분한 집, 잠에서 부스스 깬 아이들을 두고 하이톤으로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쇼생크 탈출이 따로 없다. 어제의 공기도 이런 상쾌한 공기였나 싶다. 현관에서 주차장까지 가는 짧은 시간이나마 마스크를 벗고 자유를 만끽해본다. 이렇게 좋아하니 괜히 가족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오늘은 오롯이 인간 이미영으로 지내기로 다짐한다.
당장 발명품 업무 기안을 올리고, 학교 환경 구성 물품 구입 업무도 완료했다. 내가 수업을 준비하는 동안 교감선생님과 연구부장님은 휴업 중 좀 더 효율적인 가정 학습을 위해 회의를 하신다. 나도 교감 교장 선생님께서도 이 학교는 올해 처음이지만 다들 느낌이 좋다.
"다들 도시락 싸 왔지요?"
에잉? 이건 또 무슨 말?
따로 출근 교사에게 내린 지침은 없었지만 다들 알아서 도시락을 싸 오셨다. 덤벙이고 급한 내 성격 또 티를 낸다. 톡으로 언니들에게 얘기했더니 먹는 거에 예민한 네가 오늘 또 폭발하는 거 아니냐며 농담을 한다. 다행히 같이 출근한 옆자리 선생님께서 같이 먹자고 손을 내밀어 주셨다.
선생님과 이런 저련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는데 얼마만의 성인과의 대면 대화인지 감개가 무량하다. 맛있는 김치볶음밥과 과일, 고구마까지 나눠 먹으며 이렇게 또 동갑 친구를 사귄다. 개학하면 맛난 식사를 꼭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코로나로 인한 일상의 변화가 이렇게 길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울 엄마는 '세상 일 다 나쁜 건 없다. 찾아보면 감사할 거리가 넘쳐난다'며 세 아이 키우는 큰딸이 무너질까봐 매번 단속을 하시는데, 투정 실컷 하다 전화를 끊고 나면 엄마 말씀이 다 맞는 것 같다.
온라인으로 관계의 깊이가 깊어지는 경험,
가족의 건강함에 그저 감사하는 나날,
물리적, 정신적 거리 유지 필요성의 자각,
한없이 나약한 나란 인간을 대면하는 시간,
쿠X 로켓 배송의 소중함까지...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이 아니었다면 절실히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고진감래 흥진비래(苦盡甘來 興盡悲來)라는데 이제 좋은 일만 생길 차례인 거지? 겨울잠 자듯 모든 것이 멈췄던 날들은 가고, 꽃나비와 함께 진짜 봄이 오길 간절히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