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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과 상상 Apr 25. 2020

덤짜의 하루

덤짜: 명사 원래의 것 외에 덧붙여 들어온 것.

격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면 구실이 필요했다.

어제 출근을 했고 미스터 트롯을 보고 늦게 잤다는 건 너무나 핑계 같지? 그냥 아프다고 했다.;

이런 시국에 아프다는 말은 가족들을 얼마나 철렁하게 만드는지 알면서...


커튼을 친 안방에서 누워서 핸드폰을 본다. 안방 들어가지 말라는 누나들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이놈은 불쑥불쑥 문을 연다. 그럴 때마다 초스피드로 폰을 숨기고 자는 척해야 하는 수고는 있었지만 혼자만의 휴식을 위해서라면 일도 아니었다.


'스피드 좋았어.'


딸들은 밥도 차려 주고 청소도 해주고 공부도 알아서 한다. 이런 식이라면 매일 아픈 척할까 싶은 생각도 든다.

퇴근한 남편은 머리에 손도 올리며 한껏 걱정하는 표정을 짓고 딸들의 전화에 저녁도 사들고 왔네. 아픈 연기를 하는 내가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왔는데 뻥이었다고 할 수는 없지.



남편은 더 쉬라는 말과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주었다. 조금 더 쉬다가 억지로 몸을 일으켜 가족들을 챙기는 시나리오도 짜 본다. 밖에서는 남편과 아이들의 대화 소리가 소곤소곤


"엄마 계속 아팠어?"

"아뇨, 노래 듣던데요?"

"노래?"

"네~찐 찐 찐 찐찐이야~뭐 이런 거랑 엄마 요즘 좋아하는 거 있잖아요."



하..... 저시끼가.......


"다행이네. 많이 아프진 않나 보다."

"아픈 긴요. 엄마 꾀병인 거 같은데요? 제가 들어갈 때마다 후다닥 폰을 집어넣는 거 보니..."


(문 벌컥)

"야~인마! 어마가 무슨 꾀병이야?"

"소리 지르는 거 보니 니 엄마 개안네. 니 말이 맞다 건아."

"아냐~~아프다구!! 진짜야~~."

"아~네네~알겠습니다."

"아~씨...."



"산책이나 가자! 니는 아픈 게 안 어울린다."


아픈 척하느라 밥도 잘 못 먹었는데

남편과 농담하며 장난도 치며 동네 한 바퀴 걷는 게 아픈 척 보다 낫구나.


글도 미룰 만큼 미뤄 보자 싶었는데 콧노래 흥얼거리며 글 쓰는 지금이 좋고.


나답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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