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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과 상상 Apr 25. 2020

교원노조에 가입에 즈음하여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

장래희망에 흔하디 흔한 '선생님'을 적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1997년 정부가 IMF에 자금지원을 요청하면서 진로를 비롯하여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바꼈다. 나 역시 그 분위기를 피해 가지 못했고 선생님들과 부모님의 요구로 교대에 지원하게 되었다.


타의로 진학을 한 친구들이 학교에 넘쳐났다. 의대나 스카이를 목표로 했다가 가정 형편상 교대를 온 친구, 인서울 해서 멋진 대학생활을 꿈꿨으나 집 근처라 올 수 밖에 없던 친구, 대학가면 살 빼고 남친도 사귀겠다고 기대에 부풀었으나 여초 대학에 올 수 밖에 없었던 친구, 너른 캠퍼스를 상상했으나 대륜고등학교보다 작은 학교에 실망한 친구...


그렇게 왔는 대학이 고3보다 빡빡했다. 심화과정이라는 것이 있었지만 전공은 모두 초등교육인지라 우리는 초등 교과서에 있는 모든 과목을 수업으로 들었다. 1교시에는 국어를 하다 2교시에는 체육복으로 갈아 입고 체육관으로 뛰었고 3교시에는 단소를 불다가 4교시에는 데생을 했다. 전산과 교수님은 교육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내라지 실과 교수님은 재봉틀을 돌리라지 음악과 교수님은 피아노 곡을 완성하라지...


이러하기에 타 대학과 다르게 교대 주변에는 미술학원도 피아노학원도 있다. 각 과목마다 조모임이 있기에 하루에 두 세개의 조모임을 하다 보면 밤을 세기도 일쑤다. 그래서 교대 출신이라면 '교대신'을 보며 자조적인 박장대소를 아니 할 수 없었다. (요즘 업그레이든 된 교대신도 있던데 옛날 신을 소환해 플로피 디스켓을 들고 있구나^^::)


여학생들을 체육이 힘들어서, 남학생들은 피아노가 힘들어서 자퇴자도 속속 나왔지만 전문적인 영역이 있지는 않으나 두루두루 대충 잘하는 편이었던 나는 교대가 내 체질임을 입학하고서야 알았다.


그렇게 4년간의 고3을 보내고 초임 발령을 받았을 때는 자부심도 엄청났다. 발령과 동시에 월급이 꽂히니 잉여인간에서 생산적 인간으로 거듭난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바로 택시를 이용하는 허세도 부렸으니...


"어디가십니까?"

"장산초등학교로 가주세요."

"아이고 선생님이신가 봅니다."

"네."

"신붓감 1순위에 요즘 같은 세상에 최곱니다.

 .

.

.

그런데 교사들은 애들 보내고 퇴근한다면서요?

방학 때 놀면서 돈도 받고 최고지요.

나이 많은 교사들은 좀 나가야 안 됩니까?

스승의 날만 되면 받아 먹는게 장난이 아니라는데..."


기사님들은 칭찬으로 시작하셔서 저렇게 칭찬인지 욕인지 모호한 말들로 끝내곤 하셨다.

그리고 더이상 택시에서 신분을 밝히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오해하는데 많다고 세상에 대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기에 전교조를 가입했고

사회에 발을 디딤과 동시에 교직에 대한 사회의 비판을 고민하게 되었다.


어느 사회든 극소수의 사람들이 물을 흐려 그 조직 전체를 욕을 먹인다고 한다. 교직도 예외는 아니리라. 동료 교사의 눈으로도 저 선생님은 다른 일 좀 하셨음 싶은 분도 있고, 상종하기 싫은 부류도 물론 있다. 하지만 내가 만난 선생님들은 항상 수업을 연구하고 아이들 교육을 위해 노력하는 자기 연찬에 소홀함이 없는 분들이었다.


작년에는 처음으로 교과를 맡아 좀 편하게 보낼까 싶은 약은 생각도 했었지만 교과실 선생님들 모두 수업 개선을 위한 연수에 열을 올리셔서 덩달아 배움이 있는 한해를 보냈다. 교과실에서 담임보다 연수를 많이 들으면 어떻하냐는 농담의 소리도 들었으니.


코로나 19로 학교는 휴업을 했고 교사들고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그리고 3월 6일 재택근무 서약서에 대한 공문이 내려왔다. '근무장소에 가족을 포함한 외부인 출입을 금지한다' 등의 말도 안되는 조항에 서약을 하고 제출하란다. 재택이면 집일텐데, 우리집은 거실에 컴퓨터가 있는데 가족의 출입을 금한다? 신용카드도 사용하지 말고 외출도 상신 후 하라니 이제는 반항의 마음까지 들었다.


교육 정책이라는게 교육을 위해서, 아이들을 위해서 존재하길 바란다. 그런 정책이라면 최선을 다해 따르고 지킬 것이다. 하지만 저런 말도 안되는 것들을 요구하며 일 하라는 것은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처사라고 생각한다. 교원 성과급에 등급을 매기는 제도가 생겼을 때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위해 가르치는 교사를 어떤 기준으로 나눠서 성과급 차등 지급을 한다는 말일까? 교육의 성과라는 것이 한해 한해 눈으로 드러난다면 참 좋겠지만 'TV는 사랑을 싣고' 같은 프로그램에서 장성한 후 선생님을 찾아 감사를 드리는 것을 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 그 성과를 산정하기 위해서 항상 불협화음이 발생하는 모습을 보며 더욱 그랬고.


'일 안 해도 돈 받는다'는 말을 서울시 교육감으로 들었을 때는 가뜩이나 회의 가득한 교직에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교직을 모르는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은 감수한다 쳐도 같은 교육계에 있는 사람이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도 받았다. 덕분에 교원노조에 발빠르게 가입했으니 이젠 감사하다고 해야할까?


(참고로 교사는 연봉제가 아니 호봉제다. 교사 월급은 통상임금이기에 연봉을 12개월로 나눈 개념이다. 연봉이 6천만원라면 월 5백만원씩 나누어주는 셈이다. 방학을 제외하고 6천만원을 나눠 받았으면 욕을 안 먹었을까?)


교사가 노조라고?

이런 시선을 교사 자신들도 느꼈기에 교사의 노조가입을 생경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교사의 밥그릇 싸움을 위한 단체가 아닌 교육 현안에 중점을 두고 학교 현장에 맞는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단체라면 학생-학부모-교사가 모두 행복한 교육이 되지 않을까?


교원 노조 임원도 승진을 위해 노력하는 교사도 아니면서 너무 열을 내며 글을 썼나 부끄럽다. 오히려 난 육아 휴직도 오래 했고 가정과 교직의 밸런스-가교벨?-를 유지하고 싶은 엄마 교사다. 교사로서 이득을 챙기고 교권 신장만을 바라고 글을 썼다면 교사라고 말 할 자격도 없다. 나의 세 자녀들이 학교와 선생님을 믿고 행복하게 학교 생활 하길 바라는 맘, 전국의 아이들이 학교는 즐거운 곳이라고 느끼길 바라는 맘, 모든 학부모들이 공교육을 신뢰하는 사회가 오길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 글을 쓴다.


스무살 교대생일 때부터 마음에 새겼던 말을 하고 글을 마칠까 한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


교직에 있는 날까지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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