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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과 상상 Apr 25. 2020

선생님! 출근 안 하세요?

북적이는 학교가 그립다.

다운된 기분은 어제 다 털어내려 했지만 아침까지 기분이 이어졌다. 더 자겠다 밥을 안 먹겠다는 둘째에게도 날카로운 말이 나가고, 열나는 것 같다는 남편의 말도 괜히 짜증이 난다. 아주 성의 없게 이마를 탁 만지고는 열 하나도 없구먼 무슨 꾀병이냐고 핀잔도 준다.


마침 오랜만에 대학 동기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타 대학을 다니다가 졸업 후 다시 교대 입학한 언니라 나보다 나이가 많은 동기다. 우리 막둥이는 엄마 냄새 따라 24시간을 따라다닌다는 하소연도 하고 가족 간에도 거리가 필요하다며 일장연설도 해본다. 언니는 남편 나이가 있기에 회사에서 퇴직했다며 나보다 심하냐고 웃으며 따진다. 대기업 임원이라 서울 사시는 남편과 주말 부부를 오래 한 언니가 이제 퇴직한 남편과 24시간 붙어있다고 생각하니 아들과 붙어 있는 내가 훨씬 나은 것 같다.


"야~니 진짜 스트레스 많나 보다. 나올래? 집 앞으로 갈게."

"언니~나 좀 꺼내 주라. 진짜."

"알았다. 볼일 하나 보고 커피 사들고 집 앞으로 갈게. 차에서나마 만나자."

"오예~~ 알겠어요!"


대화를 하는 도중에 전화가 계속 들어온다. 053으로 시작하는 번호는 대개 애들 학교나 내가 근무하는 학교일 가능성이 높다. 뭐 애들 휴업 중인데 전화가 여러 통 들어올 일도 없고, 내 출근일은 내일이니 학교도 아닐 거 같고 무엇보다 이 반가운 전화를 끊고 싶지가 않아 들어오는 전화를 계속 무시했었다.


한참을 통화하고 끊자마자 전화가 또 들어온다.

"선생님~~~~."


헉.

선생님~으로 시작하는 전화다. 망했다.


"아 네. 이미영입니다."

"오늘 출근일인데 학교 안 오세요?"

"네???????"

.

.

.

방금 전에 그지 꼴로 통화하며 침대서 뒹굴었는데 순식간에 등골에 식은땀이 흐른다. 원래는 내일 근무였는데. 중간에 출근일이 바뀐 걸 저장하지 않았던 내 실수였다. 순식간에 씻고 학교로 향했다. 성적은 안 나와도 지각은 한 역사가 없기에 나이를 들먹이며 또 자책을 한다.


하지만 나이 먹은 게 다 나쁘진 않구나. 한 해 한 해  해 낯짝이 두꺼워지며 '에이 그냥 납작 엎드리자' 싶다. 교감선생님께 핑계 없이 그저 죄송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교실로 올라왔다. 휴업으로 학생들이 없으니 별말씀은 없으시다.


올해 내가 사용할 영어실을 둘러보는데 영 못마땅하다. 지난번에 청소를 했지만 개운하지가 않다. 장갑을 끼고 걸레를 들고 아줌마 정신을 발휘하며 밀고 닦았다. 작년에 도대체 어느 분이 쓰셨기에 먼지가 쌓이다 못해 굳어버렸는지 화도 살짝 난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방치된 놀이 교실이었단다. 그렇지)


걸레로 훔칠 때마다 먼지가 폴폴~불치병 비염환자는 연신 기침을 해댔지만 자꾸자꾸 뽀예지는 교실을 보니 기분은 좋다. 무엇보다 잡념이 사라진다. 어제 내가 분노의 소용들이 속에 처박혀 허우적댄 것도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어서였구나 싶다.


사물함도 번쩍 들어 옮기고 교구함도 닦고 교구들을 다시 정리했다. 책상 위와 서랍 안까지 닦으려니 앞치마를 들고 올걸 후회도 된다. 가구들을 이리저리 옮겨 가며 평소엔 하지도 않는 청소에 열을 올렸다. 급하게 뛰어나오느라 얇은 원피스 달랑 하나 입고 왔지만 땀이 나면서 덥다. 기분도 좋다. 쓸데없이 감정에 휘말리지 말자고 다짐도 하며 청소를 마친 교실을 둘러보니 가르칠 맛 날 것 같다.

점심을 먹은 후 근무 선생님들과 학구를 한 바퀴 돌며 방황하는 학생들은 없는지 살다. 텅 빈 학교와 텅 빈 교실, 비까지 촉촉이 내리니 3월의 학교는 시끌벅적해야 하는데 참 씁쓸하고 슬프더라. 거리도 텅 비었고 돌아다니는 학생들도 없다. 다들 뭐 하고 있을까?


뭐 우리 집 애들처럼 늦잠도 자고 뒹굴다가 숙제 생각에 짜증도 나고 놀고 싶다는 생각에 화도 내며 지내겠지. 밥 차리며 한탄하는 엄마의 잔소리도 들을 것이고 차라리 학교를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하겠지. 오늘 엄마 건들면 난리 날 거라는 눈치도 생겼을 테고 평범한 일상이 행복이라는 것도 절실히 느끼고 있을 거야. 이제 모두 재미없던 일상을 행복하게 즐길 준비가 됐을 테니 제발 코로나야 물러가 주라.


회의가 소집됐다. 개학 후 시차 등하교부터 급식 문제까지 교장 교감 선생님의 시름이 온몸으로 느껴져 마음이 아프다. 가림막은 6인짜리를 할지 개인으로 할지, 급식 시차는 어떻게 둘지, 시정은 어떻게 할지 진지하게 얘기를 나눴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모이는 시간을 줄일지 고민하는 모습에 함께 즐거워야 할 학교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나 눈물이 날 것 같다. 쉬는 시간이면 서로 부둥켜안고 뛰어놀던 모습을 언제 다시 볼 수 있는 걸까?


교장선생님께서 지금은 비상시국이니 개개인의 편의를 생각하지 말아 달라 부탁하신다. 올해 담임 선생님들께서는 얼마나 힘드실까 괜히 죄송스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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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실도 정돈을 하고 혼자 앉아 있는 지금, 모두 자기답게 사는 게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는 학교답게, 학생은 학생답게, 교사는 교사답게, 부모는 부모답게...

학교답지 않은 학교에  어서 아이들로 채워져 학교답게 만들어주면 좋겠다. 그리고 현장에서 고생하시는 여러 선생님들의 노고가 수포로 돌아가지 않게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이들은 제발 비껴가길 간절히 기도한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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