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서원 Aug 08. 2022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래요

비닐하우스 이야기

어렸을  우리 집은 벼농사를 지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논에 가서 아빠의 일을 도와야 했다. 우리 집은 4남매이다. 언니, 오빠는 꾀를 부려 집안일에서  빠져나갔다. 그렇게 되면 엄마는 잔소리를 시작한다. 아빠가 화를 내기 전에 나는 알아서 논으로 나갔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이 시끄러워지는  너무나 싫어했던 나였다. 그래서 집안의 평화를 위해 먼저 나가서 돕곤 했다.

그땐 농사일이 지긋지긋했다. ‘왜 하필 우리 집은 벼농사를 짓는 거야?’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식사시간에 밥 한 톨 남기면 혼나기도 했다. 어릴 땐 지겹던 시골 생활이 성인이 되니 그립기 시작했다. 도시로 떠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시골을 마냥 그리워했다. 시골에 대한 환상은 아니지만, 다시 시골로 돌아가 흙을 밟으며 살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대구, 서울, 부산… 도시에서만 살았다.      


삼십 대 초반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생활은 생각과는 달리 힘들었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하루하루 삶에 쫓기듯 살았다. 그래서 시골을 잊고 지냈다. 아니, 접어 두고 살았다. 맞벌이를 해도 언제나 돈은 부족했고, 삶에 재미도 없었다.

 이상은 고생하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 말해 고생만 하는 것이 싫었다. 이러다가 내가 하고 싶은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인생이 끝날  같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하고 싶은  하면서 살 자였다. 지금껏 남편 밑으로 돈이  들어갔으니(정확히 말하면 남편과 시댁) 나도  하고 싶은 것에 돈을 쓰면서 살고 싶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조금의 퇴직금이 나왔다.  돈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시골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은 항상 있었고  이유   가지는 농사였다.  농사를 너무나 갈망하고 있었다. 주변에선  힘든   하려고 하냐고, 월급쟁이가 제일 쉽다고들 했다. 남편의 친구   명이 충주에서 대를 이어 모종 농사를 짓고 있다. 가끔 만날 때마다 푸릇푸릇한 모종들이 가득한 하우스를 가진  친구분이 너무나 부러웠다.  남편 회사 거래처에서 모종을  키우기만 하면 책임지고 팔아주겠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없이 덜컥 모종 농사를 짓기로 했다. 경험도 없고, 아는  하나 없었지만, 식물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키울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우선 집과 가까운 곳에 비닐하우스를 살펴보며 임대할 곳을 찾기 시작했다. 하우스가 많은 논밭의 농로에 '하우스 임대 주실 분 전화 주세요 010-000-0000'라고 적힌 A4용지를 전봇대마다 붙이기 시작했다. 분명 전화가 많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하우스 몇 동 필요해요?"

다짜고짜 본론부터 얘기하는 아저씨의 목소리였다.  떨리는 목소리로  세동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전봇대 번호 7번으로 와서 전화를 하라고 하며 통화는 끝났다. 그렇게 얼떨결에 약속을 잡았다. 전봇대마다 번호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하우스는 쉽게 찾을  있었다. 오십대로 보이는 젊은 농부 아저씨께서  하우스  동을 보여주었다. 생각보다 허름한 모습에 놀라긴 했지만 여기 아니면 하우스를  구할  같았다. 그래서 얼른 3동을 하겠다며 2 계약을 했다.     


겨우내 열심히 온도조절을 해가며 모종을 키웠다. 주력상품은 고추 모종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시장에 파는  파릇파릇하고 싱싱해 보였다. 하지만 나의 모종들은 하나같이 노란빛이 돌고 연약해 보였다. 모종들을 팔지 못하고 모두 엎어야 했다. 결국  1 만에 모종 농사를 접어야 했다. 남은 기간  1년은 이런저런 각종 채소들을 키우며 시간을 보냈다. 농사를 접은 지금 남은  빚뿐이지만, 그때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참고 살았던 나의 갈증을 그곳에    있었고, 농사를 만만하게 봐서는 안된다는 것을 몸소 배웠다. 그것도 아주 비싼 돈을 써가며.     


 힘들었던 2 동안 집엔 채소들이 넘쳐났고 주변에도 많이 나눠 주었다. 나에겐 텃밭 수준이 적당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돈은 날리고 2년이라는 시간도 날아갔지만,  돈이 생기면 땅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하우스를 지을 것이다.  각종 채소를 키우며 이웃들과 나눠 먹을 것이고, 그것으로  힐링을  것이다. 농사는 나에게 밥벌이가 아닌 힐링이었다. 그것을 그땐 몰랐었다.


내가 하고 싶은  한다는  결과의 성패를 떠나 살아가는 목적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하고 싶다면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상황, 형편을 생각하다 보면 내가 살고 싶은 데로 사는  아니라 상황에 떠밀려 살게 된다. 인생의 주객이 바뀐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알 수 없는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