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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원 Sep 14. 2022

01 엄마가 들려주는 엄마 이야기

도토리에 맞아 본 사람

추석에는 딱히 문을 열고 장사하는 식당도 별로 없고, 자동차 두대로 돌아다니기도 뭐해서 가족끼리 움직이지 않은지 몇 년 되었다. 아빠가 살아계실 때는 명절이면 모여서 크게 한 바퀴 돌며 드라이브를 즐겼다.

하지만 율이가 태어나고, 돌아다녀도 먹을 때도 마땅히 없고, 어린아이도 있으니 그냥 집에서 밥 한 끼 먹고 헤어지기 일수였다. 가족 모두가 함께 움직이는 게 힘들기도 하지만,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그것이 못내 서운했나 보다. 엄마와 대화하던 중 엄마는 서운함을 표했다. 나는 명절 당일에는 밥 먹을 식당도 없고, 자동차도 두대 움직여야 해서 고생이다고 그냥 주말에 날 잡아 움직이자며 핑계 아닌 핑계를 댔다.


엄마가 계속 신경이 쓰여 언니와 함께 바람을 세려 한 바퀴 돌았다. 어디로 가고 싶냐고 해도 딱히 말하지도 않는다. 그냥 내가 알아서 가야 한다. 이럴 땐 정말 답답함이 밀려오지만 표현하지 않고 그냥 바닷가로 향했다.


영일만항을 지날 때였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파도가 심하게 치고 있었다. 아까운 파도를 그냥 두지 않는 스포츠인들이 파도를 즐기고 있었다. 바람을 가르며 파도와 정면 승부하는 모습이 멋있기까지 했다.


우리는 차를 세울 곳을 찾아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고 방파재를 따라 걸었다. 바닥에 바위가 많은 곳에서 우리는 한참 동안 물속을 바라보며 얘기를 나누며 사진도 찍었다.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어 머리카락이 물미역 마냥 얼굴을 휘감았다. 사진 속 세 사람의 얼굴은 하나같이 물귀신처럼 나왔다.


톳이며, 미역이 바위에 달라붙어 거친 파도에 떨어지지 않으려 악착같이 달라붙어 있는 모습이 마치 사람과 같았다. 험난한 인생의 장애물을 견디고 때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사람들의 모습.

해초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하며 나는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악착같이 잘 살아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주먹이었다.


나름 베이커리로 유명한 카페에 들어가 우리는 달콤한 빵과 커피로 배를 채우고 맞은편 공원으로 가서 가을 사진을 찍었다. 반짝이는 은빛 물결을 일으키는 억새와 울긋불긋 변해가는 담쟁이 그리고 높은 하늘. 거친 바람을 빼고는 최고의 가을을 느낄 수 있었다.


차로 돌아와 우리는 출발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엄마는 어릴 적 거친 바람이 부는 날에는 참나무 밑으로 바구니를 들고 도토리를 주우러 갔었다고 했다. 바람에 한가득 떨어진 도토리들을 주워 담으면 금방 한 바구니를 채울 수 있었다고 한다. 열심히 도토리를 주워 담다 보면 거친 바람에 도토리가 우두둑 떨어지곤 하는데 떨어지는 도토리에 머리를 안 맞아본 사람이 없다고 했다. 특히 뾰족한 부분으로 머리를 맞으면 그 조그마한 도토리도 엄청 아프다고 했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도토리를 주워다가 물에 불리고 껍질을 벗겨 디딜방아에 빻았다고 한다. 지금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디딜방아.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이 방아를 밟고, 앞쪽에 한 사람이 이리저리 튀는 도토리를 모으고 다시 넣으며 방아를 찧으면 도토리들은 금방 가루가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도토리가루로 묵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아 삼짓돈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시절엔 봄이면 나물을 캐다 팔고, 가을이면 도토리묵과 버섯을 따다 팔고, 무엇이든 돈이 될 수 있는 것들을 해다 팔았다고 한다. 남의 집 땔감도 돈을 받고 많이 해다 줬었다고 한다. 산에 있는 잔가지들을 모다 많이 묶으려 무릎으로 누리기를 많이 해서 지금 무릎을 못쓴다는 말을 했다. 그 시절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몸이 일찍 망가졌다고, 엄마는 애써 웃으며 그 시절을 회상했다.


바람으로 시작해 몸이 망가지기까지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우리 세 사람은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 돌아오며 나는 생각한다. 나는 시대를 잘 타고나서 참 행복하구나. 복에 겨워 소중함을 너무 몰랐구나라고 생각하며 유명 유튜버의 '단군이래 가장 돈 벌기 쉬운 시기'라는 말이 생각났다. 엄마는 돈을 만들기 위해 산으로 다녔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깊이 생각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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