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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원 Oct 01. 2022

아쉬운, 그 시절

변함없는 시골, 달라진 건 나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괴산으로 도망을 간 적이 있다. 한마디로 현실도피였다. 우리 부부는 돈에 쫓기며 살다 너무나 힘들어 모든 것을 버리고 시골에 계신 시어머니 집으로 들어가 산 적이 있다. 약 1년 동안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지냈다.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잘못된 선택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 열심히 돈을 벌어야 했었는데, 도피를 하다 보니 경제적으로 더더욱 어려워졌다.


지금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갈 수 있는 시골이 없어졌다. 그 후로 괴산을 한 번도 찾은 적이 없다. 괴산에서의 풍경이 몇 번 꿈속에 나타난 적은 있었지만, 남편이 어머니 생각으로 슬픔에 잠길까 봐 가보자는 말을 못 했다. 돈이라도 있었으면 그 집을 사놓고, 가끔씩 추억하며 놀러 갈 곳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너무나 아쉽다.

어머니는 인삼농사를 지으셨는데 모두 남의 땅이고, 사는 집도 남의 집이었다. 그래서 돌아가시고 재산을 정리하니 빚뿐이었다. 여자 혼자서 힘들게 고생하며 사셨는데. 결국 빚뿐이라니...


돌아가신 지 7년 만에 처음으로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그 동네가 너무 그립다고. 한번 둘러보고 싶다고. 우리는 충주에 있는 시동생을 만나고 점심을 먹고 헤어지고 괴산으로 향했다. 그곳을 떠난 지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어쩜 그리 변한 게 없는지. 간간이 새집이 들어선 거 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남의 밭에 인삼 캐러 도와주러 간 일. 대파 심으러 품앗이 간 일. 이장님 댁 고구마 캐러 간 일. 버섯 따러 산에 올라 간 일. 보리라는 진돗개와 산에 올라가 고라니를 눈앞에서 만난 일. 다슬기 잡으러 가서 돌만 주워온 일.

그땐 너무나 힘들었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재미있었던 기억만이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보는 곳마다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여전히 변함없는 시골을 보며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생각해 보았다.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었으나 나이만 먹은 건 아니었다. 함께 성장도 한 것 같아 그 시절의 못난 내 모습이 못내 아쉬웠다.


어머니께서 살던 집 가까이 가보고 싶었지만 그냥 먼발치에서 보며 우리는 스쳐 지나갔다.


이젠 어머님의 시골이 아닌 우리들만의 시골을 만들고 싶다. 딸아이가 나이를 먹고 좋았던 기억으로 추억을 할 수 있을 그런 시골을.


몸이 하루가 다르게 노화되어 체력이 떨어지고 쉽게 지친다. 그래서 나의 마음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더 늦기 전에 빨리 우리의 시골을 만들어야 한다고.


다행히도 남편도 같은 마음이다. 우리는 하루하루 열심히 살며 시골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하루빨리 만들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머지않아 우리의 시골을 상상하며 나는 오늘도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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