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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원 Nov 14. 2022

03 율이 이야기

걷고 또 걷고

율이가 돌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고, 생각보다 우울했다.


혼자서는 잘 돌아다니지 않는 성격이지만, 갓 돌을 지나 제법 사람 구실 하는(아장아장 제법 걷기 시작) 정도가 되자 나는 아이와 함께 밖으로 돌기 시작했다.



용기를 내어 혼자서는 절대 가지 못하는 저수지도 유모차를 끌고 다니기 시작했다.

울퉁불퉁 돌길도, 나무다리와 계단도 난 씩씩하게 유모차를 들어 옮기며 걷고 또 걸었다.


마냥 신이 난 율이와는 달리 땀을 흘리고 지쳐가는 나를 발견했지만, 나무 그늘에 앉아 가지고 온 간식이나 시원한 물을 마실 때면 나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육체적으로 힘드니 복잡하던 머리도 단순해지고 시원했다.

나는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누비는 것을 율이가 21개월이 될 때까지 반복했다.


그리고 이젠 유모차만 타는걸 지겨워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


좀 더 데리고 다니고 싶다는 마음과 친구들을 만나게 하는 것이 아이에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공존했다


율이 할머니는 너무 일찍 어린이집에 보낸 것이 아니냐며 나를 나무랐다.


홀가분하면서 어린이집에 잘 적응할지를 걱정하며 그동안 율이에게 묶여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나를 위해 취미생활을 만들어 주었다.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오래전에 손 놓았던 그림을 그리니 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가고 기분이 너무너무 좋았다.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정말 오랜만에 받는 것 같았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집안일이나 율이를 걱정하는 마음을 잊고 오로지 그림의 세계에만 빠져들 수 있었다.


지금은 조금 게을리하고 있지만 나에게 있어 그림은 또 다른 나와 만나는 시간인 것이다.


나는 이젠 매일은 아니지만 틈나는 대로 또 다른 나를 만난다. 그리고 앞으로도 쭈욱 만나며 나의 삶과 균형을 맞추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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