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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원 Nov 14. 2022

02 엄마가 들려주는 엄마 이야기

죽순이 뭐라고

작년은 유난히 가뭄이 심했다.

울산에서 위로 올라가며 감포, 구룡포를 거쳐 드라이브를 하는데 긴 가뭄 때문인지 싱그러워야 하는 산과 들이 누렇게 변해있었다. 마치 병충해로 피해를 본 듯이...


사계절 푸른 빛을 자랑하는 대나무 숲들도 하나같아 누렇게 가을에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듯, 대나무 숲이 변해있었다.


가뭄이 길어지니 그 생명력 끈질긴 대나무도 죽는구나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뒷자리에 있던 엄마는 말을 했다.


엄마의 젊은 시절, 아니 어린 시절이라 하는 게 맞겠다.

엄마의 엄마들이 모두 밭일을 나갔을 무렵 엄마와 친구 두 명과 석호네 뒷동산인 대나무 밭으로 갔다고 한다. 비가 온 뒤라 여기저기 죽순들이 뾰족뾰족 얼굴을 내밀었다고 한다


튀어나온 죽순의 땅끝의 경계선을 잡고 힘껏 "똑" 소리 내며 죽순을 따고 있는데 동네 오빠인 석호 오빠가 올라왔다고 한다.


석호 오빠는 못됐기로 동네에서 이미 유명한 사람이었다.


어디서 남의 죽순을 따느냐며 세 소녀를 끌어 잡고서 뒷동산에 있는 큰 참나무에 세 소녀를 노끈으로 묶었다고 한다.


엄연히 말해서는 그 대나무밭은 그 집 것이 아니라 뒷동산의 것인데, 다만 석호 오빠네 집 뒤뜰까지 번져 자랐을 뿐인데 마치 자기 집의 대나무마냥 행동한 것이다.


그 세 소녀는 어른들이 일 마치고 돌아오는 초저녁까지 묶여있었고 어른들이 와서 석호 오빠를 혼내면서 끝이 났다고 한다.


엄마의 얘기를 듣는데 정말 어이가 없어 한참을 웃었다. 아무리 못됐기로 유명해도 그건 아니지, 그리고 가만히 묶여있던 세 소녀도 너무나 순진한 것 같다. 왜 아무도 따지고 달려들지 않았을까? 그 정도로 무서운 사람이었을까?


그 후로 엄마는 절대 그 집 근처로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고 한다.


엄마의 얘기를 듣고 난 후 나는 창밖의 죽어가는 대나무를 보았다.




그해 울산지역에는 대나무 꽃이 많이 폈다는 기사가 났었다. 알고 보니 대나무는 죽기 전에 혼신의 힘을 다해 꽃을 피우고 그리고 죽는다고 한다.


죽기 전 번식을 위해 꽃을 피우고 씨앗을 사방으로 날리고 나서야 편안히 눈을 감는 것이다.


대나무 꽃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죽은 대나무를 보며 죽기 전 꽃피었던 대나무를 생각해 보니, 나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작품들을 남겨보자! 힘이 빠져 무엇을 들 힘이 없을 때까지 그리고 또 그려 내 작품들을 많이 남겨보리라 마음을 먹으며 엄마와의 드라이브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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