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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원 Jan 13. 2023

양심

고양이의 보은??

  

딸아이의 독서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관에서 책 10권을 빌려온다.

매일 그림책을 2권 혹은 3권씩 읽어주는 일이 숙제 아닌 숙제이다.     

그러던 중 오늘 읽어야 할 분량의 책을 바닥에 놓아두고 잠시 깜빡하고 있었다.

다음 날 그 책을 책상 위로 올렸을 땐 책은 이미 새책이 아니었다.

책 등 한쪽을 고양이가 질겅질겅 씹었는지 송곳으로 찌른듯한 자국이 몇 개 나 있었다.     

바닥에 두고 깜빡한 나 자신을 원망하며 투명테이프로 티가 나지 않게 테이핑을 했다.


다행히도 세 권 중 두 권을 씹었다. 그나마 한 권은 살렸다.     

딸아이에게도 절대로 책을 바닥에 두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책을 더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반납하러 갔다.

굳이 말하지 않으면 씹힌 그 부위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가는 내내 나의 마음은 두근반세근반 콩닥콩닥 뛰었다.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계속 생각하며.     

그냥 자동기계로 반납하고 말하지 말까?

우선 도서관에 들어서니 반납기계에 사람이 서 있었다.     

뒤에서 사서분이 말을 했다.     


“반납이면 이쪽에서 도와 드릴게요”     

나는 쭈뼛쭈뼛 거리며 사서분에게 책 10권을 내밀고 두 권을 따로 잡아 보였다.     

“그런데, 이게 고양이가 물어서 이렇게 됐어요. 제가 테이핑을 하긴 했는데 어떡해야 할까요?”

나는 털어놓았다.     


사서분은 깜짝 놀라며 책을 이리저리 살폈다.     

누가 봐도 티는 그리 나지 않았지만 사서분은 계속 책을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어. 이거 새로 사주셔야겠는데요.”

“네...”

“반납처리는 해 놓을게요. 책 검색되지 않게 보관하고 있을게요”

“그러면 제가 책을 사서 최대한 빨리 가지고 오겠습니다”

“강아지가 아니고 고양이가 왜 물었지?”

사서분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도서에 붙은 스티커를 떼고 있었다.     


나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생각지도 않은 일에 책 두 권을 사야 하니. 아까웠다.

그 책이 너무너무 마음에 드는 책이면 사주고도 내 것이 생기는 아깝지 않겠지만 그다지 소장하고 싶지 않은 책이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혹시나 혹시나 그냥 넘어가 줄 거라는 약간의 기대도 있었는데...     

나는 책을 반납하고 다시 아이가 볼 책을 대여해서 나오며 최대한 빨리 오겠노라고 말하며 밖으로 나왔다.     

시동을 걸고 차 안에서 나는 바로 책을 주문했다.

25000원이 이렇게 날아갔다.     


아휴. 저절로 나오는 한숨에 소장용 책을 샀다고 생각하자며 마음을 다독이며 작업실로 출발했다.     

이틀 뒤 책이 도착했고 나는 대여해 온 책을 챙겨 새책과 함께 도서관으로 향했다.     

대여한 책을 반납처리하고 새책 두 권을 내밀었다.     

그리고 두 권의 헌책을 받았다.     

이렇게 된 이상 열심히 책을 빌려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나는 10권의 그림책을 또 빌려 나왔다.

도서관에 들어간 돈이 있으니 더더욱 열심히 빌리러 와야겠다는 굳은 결심이 절로 생겼다.

정말 알 수 없는 웃긴 마음이다.     

그리고 이제는 책을 절대 바닥에 놓지 않는다.

무조건 책상 위.

그것도 절대로 고양이가 가까이할 수 없는 곳에 놓아둔다.


내 개인책들은 물어도 괜찮지만 대여한 책들은 절대적으로 지키리라.     

얼떨결에 내 책이 된 그 그림책을 보고 또 보았다.

내 책이 되고 나니 더 재미있어 보이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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