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넷플에서 인기몰이중인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을 봤다.
오늘 감정이입이 너무 잘돼서 눈물이 난 장면은 김 부장이 명예퇴직을 하고 사무실을 나오는 장면이었다.
우리 아빠는 근속 25년을 마치고 정년퇴직을 하셨는데…
이 얼마나 자식을 위해 더럽고 치사하고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 버텼을까 생각하니까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자식이 하나였으면 그나마 엄마랑 세 식구 편안하게 살았을지도 모를 텐데..
자식이 둘도 아닌 셋을 키워오면서 외벌이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우리 아빠는 돈을 너무 안 써서 별명이 자린고비였다.
막상 내가 아빠가 한참 열심히 구두쇠, 자린고비라는 별명이 불렸던 나이가 되어보니
아빠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내 앞에 딸린 식구가 저 정도이면 내가 뭘 하나라도 아껴야 자식입에 뭘 하나라도 넣어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마음 때문에 아빠는 이것저것 아꼈을지도 모른다.
아빠가 한참 우리를 위해 애쓰던 마흔셋.. 그 당시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아빠는 내게 철마다 새 옷을 사준 적이 없다.. 서울에 사는 고모딸이 입던 옷을 물려 입고 다니도록 했으니까..
그만큼 우리 집 사정이 안 좋았던 것도 아닌데…. 왜 고모딸이 입던 옷을 내가 입고 다녀야 했는지..
동네 언니가 입던 옷을 물려 입고 다녀야 했는지…그 당시엔 정말 그게 너무 짜증 났다..
새 옷 하나 좋은 거 사주면 될 텐데… 명절에 코트 한 벌 사준다는 그 마음으로 버티고 버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자식이 셋이고 외벌이인데 본인이 벌어오는 월급으로 자식들에게 분명 다 쓸 순 없었을 것이다.
자식들이 중학교 고등학교 가면 돈은 더 들어갈 테니 그 돈을 저축을 해야 하니까
전기세 나가니까 전기 아껴라, 보일러도 씻고 나면 바로바로 꺼라, 물 아껴 써라, 휴지도 아껴 써라.. 등등
그런 말을 왜 달고 살았는지 이해가 간다..
드라마를 보고 있으니… 열심히 살아준 아빠가 너무 고맙고 아빠가 그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