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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효원 Oct 07. 2024

할아버지와 옥수수

유난히 더운 여름,

ATM기기가 안된다고 나를 찾고,

EMS고객들이 주소 좀 대신 써줘라..

고객들이 여기저기 나를 부른다.


바쁜 숨을 잠시나마 숨 고르기 하고 앉아있는데,

책상에 하얀 달력에 옥수수 하나가 감싸 놓여있다.

뜨거운 김을 식지 말라고 너무 싸 온 탓인지,

날씨가 그 마음을 질투 내어

더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는지

옥수수에서는 쉰내가 풀풀 풍겼다.


옥수수의 첫인상은 내게

'대체 이건 뭐야, 내 책상이 쓰레기통이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세히 봐야 그 진심을 읽어낼 수 있다.


다시금 달력에 싸여있는 옥수수 한 개를 바라보니,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분명 요리조리 10평 남짓되는 곳을 동분서주하는

내 모습을 보고 더운 날 힘내라는 간식을 놓고 간 게

분명했다.


나는 고객들 중 누군가 놓고 갔을까...

하나씩 얼굴을 떠올렸다..

도통 생각이 안 난다...


누군지 모를 때는 기다리면 온정의 손길을

표하고 간 사람이 나타난다.


한 일주일쯤 지났을까? 나의 예상 적중


가끔 "아이고, 더운데 고생이 많아, 나 돈 찾는 거 계좌번호 좀 적어줘"라고 부탁하는

김 씨 할아버지였다.


김 씨 할아버지는 한쪽 편마비를 갖고 계시며,

아들을 먼저 보내고 아들의 연금으로 생활하며

사는 낙이 없다고 항상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내 몇 안 되는 팬 중에 한 분 이시다.


김 씨 할아버지는 친구집에 놀러 갔다가

찰 옥수수가 너무 맛있어서

우체국 경찰아가씨 하나 갖다 주게 하나만 챙겨줘 봐.. 하면서 친구에게 얻어왔다고 한다.


나는 그 마음도 모르고

처음에 꾸깃꾸깃 싸여있는 옥수수에 짜증 냈던

미운 얼굴이 책상 위 거울에 비치는 듯해서

얼굴이 나도 모르게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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