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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런이유지 Jul 29. 2023

밥 짓는 냄새가 가득한 집(1)

같은 음식도 나 혼자 먹으면 ‘대충 때우는 무엇’이 되고 누군가를 위한다면 ‘요리’가 된다. 특히 누군가를 위하는 요리라는 단어엔 왠지 존중의 의미가 느껴진다. 선물 중에서도 손수 준비한 음식은 멸치볶음 같은 별것 아닌 밑반찬일지라도 선물 이상의 어떤 특별함을 가진다. 음식을 나누는 사이에는 허물이 없기 때문일까?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에는 왠지 더 다정함이 느껴져서일까?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뜨끈한 열기는 곧 우리 몸을 지탱하는 에너지가 되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행위는 작고 사소하지만 어떤 숭고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어릴 적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엔 부엌에서 밥 짓는 엄마를 뒤에 두고 함께 놀이를 하는 우리 삼 남매와 음식냄새가 가득했던 집안의 공기가 있다. 어떤 날은 요리하는 엄마를 돕겠다며 각자 역할을 부여받아 정말 열심히 무언가를 하기도 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1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제사상에 올릴 동그랑땡을 만들던 일이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발달이 없던 90년대 후반이었고 엄마는 요리솜씨가 없었다. 언니는 중학생 나는 아직 초등학생이었다. 간도 안 맞고 작고 동그란 모양이 아닌 언젠가 재래시장에서 보던 넓적한 녹두전을 닮아있었다. 작고 귀여운 동그랑땡을 상상했다가 실망했던 그 작은 주방 바닥에서의 기억이 생생하다. 시간은 자정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쓸만한 동그랑땡은 만들지 못한 채 시간만 지체됐다. 지친 우리는 나의 아이디어로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섞어 만들기로 마무리했다. 무엇을 한꺼번에 섞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가루재료였던 것 같다. 그날 만들던 동그랑땡이 우리의 첫 동그랑땡이었다.


더 오래된 기억 안에서 우리 다섯 가족은 어느 주택에 딸린 단칸방에서 살았다. 화장실도 밖에 있었다. 나는 이 집에 살던 유년 시절을 가장 가난했고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하고 있다. 난 초등학교 1학년 언니는 같은 학교의 3학년 그리고 동생은 어린이집에 다닐 나이였다. TV에서는 어린이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고 지각 위기에 놓인 우리는 엄마 앞에 모여 앉아 김에 싼 밥을 순서대로 받아먹었다. 그날 먹던 투명 플라스틱에 담긴 삼부자 김의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고 그 후 몇 번을 다시 먹어봐도 그때의 맛은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 우리가 정말 지각을 했는지 어땠는지 같은 기억도 없다.


어린 시절 집안에서 느꼈던 행복 안에는 늘 맛있는 음식이 있다. 외식도 많이 하지 않았고 짜장면 말고는 배달음식도 없던 시절이라 거의 모든 것은 엄마의 손맛이었다. 그런 기억이 떠올라서일까? 다섯살짜리 꼬마와 함께하는 요즘 나는 부쩍 집밥에 관심이 많다. 시골에 살고 있다는 환경적 요인보다는 앞선 추억들 때문일 것이다. 가게 오픈 초기에는 도저히 집에서 밥을 해 먹을 수 없는 상황이라 주로 사 먹거나 월 반찬을 주문하기도 했다. 누가 해서 가져다주는 음식조차 일하며 서서 먹는 일이 잦은 때라 집에서 밥 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시간은 흘러 분유를 먹던 아이는 자랐고 일을 너무 많이 하는 부모의 입장으로서 아이에게 뭔가를 못해주고 있다는 죄책감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장난감이나 책 같은 아이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건들로 집을 채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공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에 퍼지는 밥 짓는 냄새를 그리워하는 나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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