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짓는 냄새를 그리워하다가 생각이 났다. 나는 음식을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만드는 것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케이크 만드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케이크를 만드는 것이 아닌 먹는 것이 일이었다면 진작 그만뒀을 거다. 혼자서는 밥 챙기는 것이 귀찮아 끼니를 거르기도 하지만 함께 먹을 사람이 있으면 한 번에 여러 가지 요리를 멀티로 해내던 나였는데. 매일 새벽까지 야근을 하던 시기에는 집에서 손수 밥을 지어먹는 날이 또 올까 싶어 괜히 마음이 뒤숭숭하기도 했다. 23년째 피자가게를 운영하시느라 집밥 드실 일이 전혀 없는 시댁의 텅 빈 냉장고가 떠올랐다. 곧 맞이하게 될 우리 집 냉장고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바쁜 틈을 비집고 온 약간의 여유는 수면아래 잠겨있던 밥 짓는 냄새를 상기시켰다.
한창 식재료를 열심히 사다 나르던 때가 있었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는 넘치던 의욕이 집에만 들어오면 사라지는 마법에 걸려있던 때다. 어쩌다 의욕이 지나칠 땐 전골이나 해물탕 같은 난도 높은 요리의 재료를 사기도 했다. 사놓고 먹질 않으니 각종 채소들과 해산물들은 먹고 싶다는 욕망에 희생된 한낱 충동구매 물품에 지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면 장바구니 안의 식재료들은 냉장실과 냉동실에 적절히 배치된다. 야근에 지쳐있던 몸과 마음의 상태는 정리 안된 냉장고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고 한번 들어간 재료들이 요리를 위해 다시 주방으로 나오는 일은 정말 드물었다. 온종일 서서 일하다가 집에 들어오면 내 몸과 정신을 지배하는 건 먹는 욕구보다는 휴식의 욕구이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마주하는 구석구석 쌓인 식재료들은 시들어갔고 그걸 보고도 어쩌지 못하는 내 마음도 편치 않았다. 사 왔던 상태 그대로 버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다가 한 번씩 에너지가 솟구치는 날엔 냉장고 안의 각종 재료들은 내 손을 거쳐 새로운 음식으로 재탄생했다. 몇 가지 반찬과 국을 만들어 두면 한 2~3일쯤은 아이에게 죄책감 없는 끼니를 선물할 수 있다. 큰 마음먹고 이렇게나 고생해서 만든 반찬인데 고작 이틀 삼일이라니. 좀 억울한 생각이 들어 양을 많이 하면 꼭 그 반찬통은 냉장고 뒤쪽으로 밀려 결국엔 버려진다.
음식이 완성되면 놀이를 하다가 배고프다며 냄새를 쫓아 달려온 아이의 식판에 밥과 국과 방금 만든 반찬을 담았다. 맛있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갓 지은 밥과 되도록 탄단지 비율에 맞춰 준비한 반찬들로 자동차 식판을 알록달록 수놓는다. 사실 나는 채워져 있는 식판만 바라봐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준비한 저녁을 아이가 다 먹어주면 좋겠지만 좀 남기는 일이 있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편식이 거의 없는 아이는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나에게 보란 듯이 열심히 밥을 먹으며 “엄마 식당 최고야”,”엄마는 요리사야”,”엄마 요리 정말 맛있다” 같은 말로 순식간에 내 마음까지 녹여버린다. 감동을 받은 나와 남편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 동안 웃음 띈 얼굴로 바라본다. 저녁시간 가족과 함께하는 주방에서의 모든 일이 단지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닌 치유의 순간이 된다.
집밥이 가진 힘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요리가 성공적이라면 땡큐고 실패한다 해도 그 시간마저 (내가 그랬던 것처럼) 행복했던 한 장면으로 뇌리에 남으니 성공도 실패도 모두 성공으로 수렴시키는 힘이 있다. 세상에 이렇게 뜻깊고 손해 없는 장사가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