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런이유지 Aug 10. 2023

집에서 밥을 먹으면

할 일이 너무 많아

집밥을 만들어 먹기 좋아하는 취향이 무색하게 일주일에 3~4번 정도로 정작 우리 가족이 집에서 밥을 해 먹는 횟수가 그렇게 많지 않다. 백수면서 아이가 없을 땐 만사가 귀찮아서 그랬지만 지금은 그 게으름이 그리울 정도로 일과 육아로 하루가 정신없이 흐르기 때문에 그렇다. 출근준비와 아이 등원준비 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란 아침에 밥을 집에서 먹기 위해서는 전 날 음식을 만들어둬야 한다. 그래야 7시 30분쯤 일어나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다. 더 일찍 일어나는 일은 불가능이다. 즉, 저녁을 집에서 만들어 먹어야 한다는 말인데 저녁을 집에서 만들려면 일이 오후 6시쯤엔 끝나야 하고 퇴근 후 다른 볼일도 없어야 한다. 우리 집 요리 담당은 나라서 퇴근 후 내 컨디션도 괜찮아야 가족을 위한 저녁상이 차려진다.


냉장고에 식재료가 있으면 바로 집으로 오지만 그렇지 않으면 마트에 들러 장을 본다.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바로 싱크대 앞에 서고 남편은 아이와 놀이를 하며 중간중간 요청에 따라 주방 보조역할을 한다. 부족하거나 깜빡 잊은 식재료가 있으면 남편은 곧장 아들과 함께 마트로 향한다. 정말 최고의 보조자다.




집밥은 다 좋은데 일이 너무 많다. 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집밥을 안 해 먹을 건 아니지만 매번 ‘집에서 밥을 먹으면 할 일이 너무 많아’라는 말이 조건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집에서 밥을 하는 모두가 공감하리라. 장바구니에서 식재료를 꺼내 정리하는 일부터 재료를 손질하며 나오는 1차 설거지와 쓰레기 정리가 있고 요리 중간에 나오는 2차 설거지와 밥을 다 먹으면 여기저기 흩어져 놓여있는 대망의 3차 설거지까지. 이 정도면 집에서도 2분이면 설거지 한판이 뚝딱하고 끝나는 업소용 식기세척기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밥을 먹고 나면 남편은 아이와 목욕을 하고 나는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를 마치면 다 씻고 나오는 아이의 몸을 닦아주고 로션을 발라주고 옷을 입혀 재우는데 요즘 아이의 평균 취침시간이 밤 10시쯤이다. 다섯 살 아들을 둔 엄마 마음으로는 늘 잠자는 시간을 9시에 맞추고 싶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밥만 먹어도 10시쯤이니 도저히 집밥과 9시 취침 사이의 원만한 합의점을 못 찾겠다.


앞서 설명한 이런저런 이유가 충족되지 않아 외식만 하다가 오늘은 며칠 만에 바짝 말라있는 싱크대 수도꼭지에 물을 적셨다. 고기만 씹혔다 하면 뱉어내는 아들이 거의 유일하게 잘 먹는 고기 요리인 떡갈비를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고기맛이 아니라 달달한 소스맛으로 먹는 것 같지만 뭐라도 좋다 네가 고기만 먹을 수 있다면). 갈아서 냉동된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진작에 한 팩씩 사다 놓고는 타이밍이 맞지 않아 며칠 째 냉장고에 모셔두던 참이었다. 채소를 다지고 고기와 양념해 손으로 치댄 떡갈비를 프라이팬 두 판에 넉넉히 굽고 소스도 만들었다. 역시나 ‘집에서 밥을 먹으면 할 일이 너무 많아’라는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왔지만 우리 세 식구의 배도 빵빵하게 튀어나왔으니 그걸로 됐다. 거기에 앞으로 세 끼니 정도는 큰 고민 없이 오늘 만들어둔 떡갈비를 꺼내먹을 수 있으니 보상도 충분하다. 내일 아침은 떡갈비랑 어울리는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일 참이다.


이전 02화 밥 짓는 냄새가 가득한 집(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