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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런이유지 Aug 12. 2023

내가 이럴 줄 알고 본업 같은 거 갖고 싶지 않았는데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적당히 감당할 수 있는 책임만 지면서 큰 부담 없이 살고 싶었다. 중요한 역할 따위에 욕심 같은 것도 없었는데 남편과 가게를 차리는 바람에 꼼짝없이 여자사장이라는 역할을 맡게 됐다. 아무리 벽만 바라보고 일을 해도 모두가 나를 여자사장으로 인지하고 있다. 이런 타이틀이 부담스러운 이유는 매장에서 판매할 모든 제품을 직접 만들어내야 한다는 회피할 수 없는 책임감을 이고지고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하필 판매 상품이 공산품이 아닌 케이크라서 하나를 팔려면 반드시 하나를 손수 만들어야 한다. 심지어 보관이 까다롭고 유통기한도 짧은 신선식품이라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다.


살면서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적이 없었다. 집에서는 언니와 남동생 사이에 낀 둘째라서 그랬고 직장에서는 늘 말단이었다. 어느 곳에 가더라도 세 명 이상 모이면 거의 듣는 입장으로 (가치관에 크게 벗어나는 일이 아니면) 내 의견을 피력하기보다 주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른다.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계약직 직원으로 회사를 다니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업무 시간 이후에는 일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온전한 나로 돌아올 수 있어서 좋았다. 근무시간 외 느끼는 마음의 평화와 자유가 내가 생각하는 말단직원의 특권이었다. 언젠가 상황이 변하면 생각이 변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세상의 주변인으로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살던 시절도 있었다.


구멍가게를 운영 중이라고 해도 이 작은 가게를 움직이기 위해서 감당해야 할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오랜 시간 자산으로 쌓인 내공과 체계를 갖추고 분야별로 인재까지 두루 갖춘 큰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작은 가게를 원만하게 운영하기 위해서 남편과 함께 각각 백조의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가 되어 살 수밖에 없었다. 오후 12시부터 5시까지 다섯 시간의 매장 운영을 위해 우리는 나머지 열아홉 시간을 쉼 없이 움직여야 한다. 잠을 자는 것조차 온전한 휴식이 아닌 영업시간을 위한 체력 비축 행위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이의 아침밥을 싸들고 짐을 챙겨 차에 오른다. 어린이집차가 도착하는 가게 앞까지 가는 동안 차 안에서 밥을 먹이고 등원시킨다. 아침을 대충 빠르게 먹고 정리 후 바로 일을 시작한다. 예약을 정리하고 계량 후 케이크 만드는 작업과 오픈 준비를 동시에 한다. 오픈 후에는 주문받기, 설거지, 중간정리, 홀케이크 장식 등의 일들을 하며 오전부터 이어진 케이크 만들기를 한다. 부모님이 아이를 봐주시던 때에는 마음 놓고 야근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하원을 위한 어린이집차가 가게 앞으로 도착하는 시간 까지가 정해진 업무 종료 시점이다. 매장을 향한 위풍당당한 아이의 발걸음이 우리에게는 ‘pc 자동 오프제’이다. 저녁을 먹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다가 씻기고 재운다. 운이 좋으면 재우고 일어나서 이런저런 자유시간을 보내고(글쓰기도 운이 좋아서 밤에 깨어있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지금은 새벽 2시 반.)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함께 잠들어 몸은 상쾌하지만 마음은 꿉꿉한 아침을 맞이한다. 반대로 이렇게 새벽시간을 희생시켜 상쾌한 마음을 얻으면 다음 날 피로곰을 양쪽 어깨에 매달고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다.

아이를 키우는 자영업자 욕심에 온전한 휴일은 없다. 매장은 매주 화요일이 휴무이지만 우리는 늘 다음 날 판매할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서 출근한다. 1주일 중 늘어지는 늦잠을 잘 수 있는 요일은 없는 것이다. 하루의 휴식을 원한다면 이틀을 쉬어야 하는데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만삭일 때와 아이가 신생아 일 때만 이틀 휴무 하고 하루를 쉬었다. 외식이 하고 싶으면 화요일에 짬을 내서 일하는 중간에 잠깐 다녀와야 한다. 화요일도 어김없이 하원시간 전에 일을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야근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어느 날에는 종일 제대로 밥도 못 먹고 일하다가 저녁을 먹기 위해서 덜 식은 제누아즈를 비닐에 담에 차에 싣고 달린 적도 있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식당의 주문 마감시간인 저녁 8시를 앞둔 시점이었다. 밥 먹는 중간중간 주차장으로 나가서 차 안에서 식고 있는 빵의 온도를 확인하며 식사를 했다. 제누아즈와 저녁 중 그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었던 우리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24시간 일한다는 생각에 그 어느 순간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생활이 이어졌다.



내가 이럴 줄 알고 본업 같은 거 갖고 싶지 않았는데. 사실 예상했던 일이기는 하다. 언젠가 이루고 싶은 목표가 생긴다면 결과를 얻게 되기까지 고생 꽤나 해야 한다는 것을. 남들보다 게으르고 남들만큼 타고난 것도 없는 탓에 그 시작이 늦어졌을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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