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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런이유지 Sep 13. 2023

운동과 함께

Happily ever after

끝이 더러운 연애라도 끝낸 듯 운동이라면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던 내가 운동하는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이렇게 글로 다짐해보려 한다. 운동 한번 안 하고 살아온 이 몸 구석구석이 얼마나 볼품없고 부실한 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그것만으로도 단편 소설이 되겠지만 일단 차치하기로 하자.


외모에 가장 관심이 많던 20대의 몸 관리란 안타깝게도 운동이 아닌 굶기였다. 그 시절 운동의 중요성에 대한 세상의 말들은 나에게 그저 백색소음일 뿐 몸을 일으키는데 아무런 동기가 되어주지 못했다. 운동에 취미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어쩔 땐 화장실 가는 게 귀찮아서 끼니도 거를 정도로 징글맞게 움직이기를 귀찮아했다. 방학땐 1주일 넘도록 집 밖을 안 나갈 만큼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 좋았다. 어느 날 검정 슈트의 비밀요원이 찾아와 어떤 미스터리한 현상으로 브라질 남부의 가여운 나무늘보 한 마리와 영혼이 바뀌었으니 당장 동행 하자고 말했어도 순순히 따랐을 것이다.


겉보기에 살이 많은 체질은 아니었지만 근육이 충분하지 않으니 인바디의 수치는 늘 경도비만이었다. 몸상태를 나타내는 수치에 한창 예민한 때였는데 내 이름이 적힌 결과지에 비만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예쁜 몸매에 욕심이 생길 때마다 어떤 운동을 하면 좋을지 생각하기보다 뭘 먹어야 살이 빠질지를 고민하며 원푸드 다이어트를 검색했다. 운동을 하면 근육이 붙을 테니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지방을 빼기 위한 식이조절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운동=근육생성=보디빌더 몸이라는 공식이 뇌리에 박혀있었기 때문이다. 운동을 시작하면 보디빌더 대회라도 출전하게 될까 봐 걱정했다. 음~ 저런 몸은 내 스타일이 아니야 역시 운동은 안 해도 되겠어. 하루에 1kg씩 빠져주길 바라며 주로 1주일짜리 원푸드 다이어트를 하며 무식하고 무모하며 무리하게 굶었다. 결국 등교준비를 하다가 엄마아빠 앞에서 우당탕 쓰러지며 극단적 식이조절 다이어트를 멈추게 됐다. 그런 식의 다이어트는 단 한 번도 나에게 원하는 몸매를 가져다주지 않았다. 날씬함의 상징인 40kg대의 몸무게가 목표였는데 아무리 굶어도 체중계의 숫자는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세상의 예쁜 여자들은 모두 40kg대를 유지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170cm에 가까운 키는 고려하지 않고 아무래도 뼈가 두꺼운 게 실패 요인이라며 죄 없는 골격만 탓했다. 내 생에 가장 어리석고 생기 없던 스무 살이었다.




근력 없이 몸을 많이 쓰는 가게 일을 어떻게 했나 스스로도 신기하다 생각할 때쯤 허리에서 신호가 왔다. 찌릿찌릿. 오래전부터 척추 측만증이 있어서 허리가 안 좋기는 했지만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구부정하게 굽은 허리를 바르게 펼 수 없었다. 머릿속에 한 번도 운동을 위한 자리를 마련한 적이 없던 나는 허리가 그 상태가 됐는데도 운동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파스를 붙였다가 복대를 해봤다가 둘 다 하다가 안되면 병원으로 달려가 물리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별 효과는 없었고 그제야 진지하게 운동을 떠올리게 됐다.


석 달째 집 근처에서 필라테스를 배우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운동의 목표가 오로지 ‘예쁜 몸매를 만들기 위함’이었겠지만 지금은 진짜 돌이킬 수 없이 허리가 망가질까 봐 두려움에 운동을 한다.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물리치료를 받듯 수업을 따랐다. 그러던 중 나를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이 국가대표 선수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 정보는 미리 알고 가는 것이 보통이지만 허리가 아팠고 센터가 가까이 있어 등록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정보가 없었다. 운동이 삶 자체인 선수를 직접 만나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마치 노벨상 수상자를 우연히 알게 된 것만큼이나 신기했다. 신기함은 호기심이 됐고 수업 중 질문이 많아졌다. 운동에 대한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말문이 막혀 그저 웃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 많기는 했지만 말이다.


수업 중 산파술을 하듯 질문과 답변을 여러 차례 이어가다 보니 수면아래 잠들어 있던 나의 욕망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허리 통증은 욕망을 깨우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내면의 소리가 또렷했다. 자연스레 생애 주기에 따른 인생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며 모든 걸 잘 받아들이고 있는 줄 알았다. 온전히 나로서만 존재하던 시기를 지나 배우자로 엄마로 자연스럽게 이동해 온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안의 어린 자아는 꾸준히 저항하고 있었다. 더 이상 외모를 돌보지 않는 것이 자연과 가까이 살며 자아가 건강해지기 때문인 줄 알았더니 출산 후 시들어가는 느낌을 외면했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전히 난 예쁜 몸을 갖고 싶다. 다행인 건 예쁜 몸의 기준이 스무 살의 그것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생기를 잃지 않은 탄력 있는 몸이 내 것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자면 건강한 식생활과 운동이 필요하다. 예전같이 한 두 달 해보고 변화를 못 느끼겠다며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요즘 가장 열일 중인 알고리즘의 이끌림으로 운동하는 노인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심지어 한 명이 아닌 여럿이었다. 바로 저거다. 이번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예쁜 몸을 만들어 근육과 함께 백년해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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