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하루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무더웠던 지난해 여름 몇 달째 수면 시간이 하루 2~3시간 정도로 짧은 날들이 반복되던 어느 날. 건전지가 다 된 아이의 장난감처럼 머리는 느리게 돌아갔고 피로에 지친 몸은 뼈와 장기가 녹아 없어지는 듯했다. 몸이 안 좋아지는 중이라고 온몸의 세포가 WARNING 사인을 켜고 생중계라도 하는 것 같았다. 이런 생활을 계속하다가는 건강을 잃게 되겠다는 생각이 공포로 다가왔지만 일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내일 약속된 케이크를 오늘은 반드시 만들어야 했다. 모든 손님들이 중요한 날 중요한 자리에 쓰기 위해서 일찍부터 알아보고 주문하는 것이라 내 사정으로 취소 안내를 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제가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당신의 생일케이크를, 프러포즈 케이크를, 부모님의 환갑 혹은 칠순케이크를, 아기 돌케이크를 준비해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에 잘해드리겠습니다..(기념일에 다음이 어디있나) ’ 차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약한 소화기능을 타고난 탓으로 자주 체하는데 그날도 급체를 해서 거의 방바닥을 기다시피 하다가 출근했다. 저기 저 창문 너머의 이웃집 할머니처럼 허리를 잔뜩 앞으로 숙인 채로 주방에 겨우 버티고 있었다. “오늘 도저히 일 못하겠어”라고 남편에게 말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꾸역꾸역 혼자서 일하던 남편이 홀케이크 손님의 방문 시간이 다가오자 상기된 얼굴로 다급하게 쫓아왔다. “얼른 내려와서 케이크 장식만 좀 해줘. 이것만 해주라. 손님 10분 있다가 도착한다고 전화 왔어. 제발 부탁이야” 복통에 시달리는 중에 그 말을 들으니 짜증 나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속이 울렁거려서 못 일어나겠다고. 특별한 요청이 있는 주문도 아닌데 내가 평소에 했던 대로 그냥 간단하게 알아서 좀 해봐. 다른 거 다 할 줄 알면서 그 간단한 거를 도대체 왜 못하는데! 일부러 안 하는 거야?(그렇지 않다는 건 내가 더 잘 안다) 내가 지금 그냥 누워서 쉬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 아파도 움직여야만 하는 이 상황에 잔뜩 신경질이 났던 건데 날 선 말들은 애꿎은 남편을 향한다. 홀케이크 장식은 너무 부담스러워서 도저히 못하겠다고 도와 달라는 부탁에 엉거주춤 주방으로 내려와 구부정한 자세로 장식을 했다. 다음 날 케이크 만드는 작업을 더 이상 늦출 수 없어서 소화에 도움이 되는 파인애플 식초와 매실액을 번갈아 마시고 등도 두드리고 손도 주무르며 일을 시작했다. 오늘은 어제 만들어둔 케이크를 전달하고 또 내일 케이크를 만들어야만 하기 때문에 기절해서 응급실에 실려가지 않는 한 몸을 움직여야 한다.
이렇게 잔혹하리만치 고된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내가 만드는 케이크가 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평가받는 것이 케이크가 아니라 그것을 만든 나 일거라는 생각. 손님 상에 놓여있는 케이크의 모습이 면접장에 서있던 내 모습과 겹쳐진다. 케이크 조각이 입으로 향하는 그 첫 순간 손님들의 표정과 리액션이 곧 결과를 발표하는 심사위원의 입이었다. 그 찰나를 위해서 시험을 앞둔 수험생의 마음으로 온종일 케이크의 완성도에 집착을 하고 있다. 지금은 언제 그럴 때가 있었나 싶지만 초기에는 케이크와 나를 동일시하는 마음이 컸다.
심사위원이 다양한 만큼 반응도 다양했다. '내가 아는 다른 가게가 더 낫네요' 혹은 '굳이 멀리까지 와서 이 돈 주고 먹을 정도는 아니에요' 하는 부정적인 후기부터 '여태 먹어본 케이크 중에 가장 맛있어요', '저 원래 케이크 안 먹는데 이렇게 다 먹은 거 처음이에요', '여행 중에 재방문한 유일한 곳이에요', '외국에서 유학하셨어요?'와 같은 앞에서 듣고도 믿기 힘든 감사한 반응까지. 시간이 지나며 긍정의 반응 빈도가 많아졌고 그 말들은 마음에 남아 힘든 시간들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