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joo Aug 17. 2023

우리 인생에도 '원청'이 있을까

위화 ≪원청(文城)≫을 읽고, 책 서평

"아직 이야기의 시작은 시작되지도 않았고, 끝도 끝이 아닌 이야기"(원청, 책에서)

 

이 책 《원청(文城)》(푸른숲, 2022)을 들고 8년 만에 작가 ‘위화’가 독자들을 찾아왔다. 모두 600쪽이 넘는 분량의 이 책의 시대 배경은 중국 청나라 말기부터 민국 초기까지의 대변혁기이다. 


중국 청나라 말기는 외세의 침범과 태평천국의 난을 비롯한 민란으로 인하여 흉흉한 가운데 왕족은 아편에 중독되고 민초들은 토비들에게 도륙 당하는 난세였다. 청춘 시절에 위화는 언젠가는 중국의 긴 역사에 바탕에 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원청(文城)》은 위화의 23년 동안 품은 꿈이 현실이 된, 지극히 위화다운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시진에 사는 린샹푸다. “시진(溪鎭)에 사는 완무당(萬畝蕩)을 소유하고 있는”(p.11) 린샹푸는 평으로 환산하면 20만 평이 넘는 넓이의 땅을 가진 대부호다. 그는 스물넷이 되던 해 홀연히 나타난 샤오메이를 만난다. 그녀는 린샹푸에게 나타났던 그해 가을처럼  딸 린바이자를 그에게 안겨주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이 책은 그녀가 갔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곳, 원청(文城)을 찾아 나서는 그의 인생을 담은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린샹푸의 인생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가짜와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 난세에서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의 공간적 배경인 원청은 린샹푸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곳이자, 린샹푸를 떠난 샤오메이의 아픔이 승화되는 곳이다. 대부호 린샹푸는 샤오메이를 찾아 그녀가 갔을 곳이라고 추정되는 원청을 향해 자신의 덩치만한 보따리 하나와 젖먹이 딸을 데리고 떠난다. 원청을 향한 린샹푸의 여정은 험난하고 지난하다. 


하지만 샤오메이를 찾아 나선 원청은 행복을 안겨준다는 파랑새처럼, 린샹푸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곳이었다. 그가 요동치는 운명 앞에서도 끝까지 인간에 대한 존엄을 잃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지켜나간 힘의 원천이 되었다. 린샹푸가 그토록 그리던 원청은 독자들에게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공명과 존중, 그리고 사랑을 떠오르게 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작가는 린샹푸와 천융량 부부의 모습을 통해 공명을 생각하게 한다. 타지에서 맞는 혹한에도 린샹푸는 린바이자를 위해 젖동냥을 다녀야만 했다. 먹고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 그곳에 정착한 천융량과 리메이롄 부부는 린샹푸 부녀에게 자신들의 따뜻한 화롯가와 죽을 내준다. 


아픈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 줄 아는 부부와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린샹푸와의 첫 만남은 서로 같은 생각과 신념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울림, 공명이 시작된 순간이다. 


“그는 엄동설한에 죽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 일부를 그에게 나눠준 거였다. 린샹푸는 그들의 큰아들을 무릎에 앉힌 뒤 입으로 죽을 불어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먹이고 자신은 한 모금도 먹지 않았다.”(p.123)      




작가는 천융량의 태도를 통해 인간에 대한 존중을 생각하게 한다. 난세에도 인간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살아남기 위해 야수가 된 사람들이 있다. 전자는 이 책에 나오는 천융량 같은 인물이고 후자는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르는 토비 같은 인물이다. 


토비에게 납치된 상인회 회장 구이민을 구하러 간 자리에서 천융량의 인간 존중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천융량은 토비에게 잡혀온 마을 사람들을 떠나게 한 뒤, 청년들에게 그와 천야오우가 제압한 토비를 묶어달라고 부탁한다. 천야오우는 잔인무도한 토비이니 굳이 묶지 말고 둘 다 죽이자고 한다. 


그의 말에 천융량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한다. “절대 안 돼, 우리는 사람을 죽이려는 게 아니라 구하려는 거야.”(p.333)   

   



작가는 샤오메이의 모습을 통해 사랑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샤오메이는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아창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린샹푸와 린바이자를 떠난다. 자신으로 인해 낯선 인생을 살게 된 린샹푸와 엄마를 모른 채 살아갈 딸에 대한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던 샤오메이는 두 사람을 위해 눈밭에서 무릎을 꿇고 제를 올린다. 


위화는 "시간의 급류는 모든 사람이 자기 선택을 하도록 만든다."라고 한다. 시간의 급류,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샤오메이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다. 


“다음 생에도 당신 딸을 낳아주고 그때는 아들도 다섯을 낳아줄게요……. 다음 생에 당신 여자가 될 자격이 없다면 소나 말이 되어, 당신이 농사를 지으면 밭을 갈고 당신이 마부가 되면 마차를 끌게요. 채찍질해도 돼요.”(p.573) 




이 책의 부제 '잃어버린 도시'는 변하는 시대 앞에서도 결코 잃어버리지 말고 지켜야 할 것에 대한 역설적 표현이 아닐까.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선 주인공 린샹푸와 난세를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에서 알 수 없는 운명에도 흔들리지 않고 의연할 수 있는 힘의 원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공명과 존중과 사랑을 만났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인생에도 원청이 있을까 하는 고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작가 장강명은 이 책을 이렇게 추천한다. 


“가끔 위화가 소설가가 아니라 마법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책을 읽고 나면 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저절로 다짐하게 된다. 주변 사람들에게 잘하자. 불행을 담담히 받아들이자. 잔인해지지 말자. 전쟁을 막자.”   


#원청 #文城 #위화 #인생 

   

by eunjoo [원청, 책 서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