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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oo Jun 24. 2023

딸, 너는 이미 완벽한 존재였구나!

딸에게 닿기를 바라는 엄마의 늦은 고백

완벽하다. 누구나 바라는 모습이 아닐까 한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완벽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칭찬을 넘어 찬사가 될 것이다.   

   

내 딸아이는 완벽하다. 그러니까 나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엄친딸을 둔 행복한 엄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미련한 엄마이기도 하다.    



  

딸아이가 지닌 그 모든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내 프리즘을 통해서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딸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시작된 것 같다. 직장맘인 나는 직업인으로서 내 일도 엄마로서 딸아이 육아도 모두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퇴근 후 집에 돌아가서 저녁을 하고 설거지와 청소를 마치고 나면, 시계는 항상 밤 10시를 향해 갔다.


“그래,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이 말을 방패 삼아 자기 합리화를 하며 하루 이틀 사흘 그렇게 딸아이 학교생활은 내게서 멀어져 갔다. 딸아이의 학교생활을 제대로 살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점점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 미안함이 너무 커져서였을까, 한편으로는 육아가 아니라 딸아이에게 원망을 돌리기도 했던 것 같다.         



딸아이 학교는 매주 목요일에 받아쓰기 시험을 봤다. 이 쪽지시험 전날은 내 스트레스 지수가 하늘을 찔러 우리 집은 폭풍 전야가 되었다. 담임 선생님이 내 준 예비 시험지에 나오는 문장을 내가 불러주면 딸아이가 받아썼다.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지더니 어느 순간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물론 문장 부호까지 들어가는 수준이 되었다.      

 

수요일 밤 9시가 넘어서 시작되는 딸아이와 나의 받아쓰기 시험 준비는 여덟 살 아이와 마흔의 엄마에게 정말 많은 인내와 노력을 요구했다. 어느 날 완벽한 딸아이가 제안을 했다. “엄마, 누워서 시험 보면 안 돼?” “받아쓰기를 어떻게 누워서 해?” “너무 졸린데 그럼 어떻게?” “그~래, 그럼 엄마가 불러줄게 너는 말하면서 손으로 허공에다 그려봐.” “알겠어~~.”   


그날부터 우리에게 받아쓰기 시험 준비는 즐거운 놀이가 되었다. “야구장에 갔었습니다.” “ㅇ 에다가 ㅑ, 다음에 ㄱ 에다가 ㅜ, … ” “그럼 이제 손가락으로 그려봐” “이렇게 하고 이렇게 그리고 이렇게, 잘 봤지?” “응. 잘했어, 한 번만 더 그려봐.” “알겠어...” 다행히도 그때까지 나는 시험 점수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지 않은가. 과정이 즐거웠으니 다소 씁쓸한 결과라도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완벽한 딸아이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점점 엄마인 내 프리즘에 의해 굴절되고 왜곡되어 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때 나는 딸아이에게 엄마가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공부밖에 없고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적인 줄만 알았던 그런 부모가 아닌 학(學)부모였다.  


스스로 알아서 잘한다는 야무지다는 아이들 이야기나 아이가 너무 잘해서 뭐 하나 신경 쓸게 없다고 말하는 엄마를 만난 날에 내 프리즘은 그야말로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빛깔 무지개가 되어 딸아이를 바라보게 되었다. 딸아이는 학교에서나 외부에 나갔을 때나 똑똑하고 반듯하다고 칭찬받는 아이였다.  


잘하는 것이 많은 아이였음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나는 딸아이가 하기 싫어하는 것만 골라 가면서 "이건 이래서 해야 하고 저건 저래서 해야 한다"라고 팥쥐 엄마처럼 굴었다. 딸아이가 못마땅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때 나는 딸아이의 특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세상의 잣대로만 내 아이를 판단한 우매한 엄마였다.

 



이제 와서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그랬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본다. 하지만 그 시간이 딸아이에게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지를 생각하면 내가 한 행동이 너무 끔찍해서 딸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못 하겠다.

   

지금 딸아이는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잠꾸러긴 줄만 알았던 아이가 새벽에 일어나서 빵집 오픈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원엘 간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저녁을 해 놓고 기다리는 딸아이, 엄마가 혹여 점심을 굶을까 염려되어 도서관으로 간식과 도시락 선물을 보내주는 딸아이.


참으로 다정다감하고 속 깊은 딸이다. 학부모였던 나에게 엄마의 자리를 찾아준 완벽한 울 딸내미는 오늘도 아침 일찍 가방을 챙겨 “주말인데 엄마와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해”라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항해에 나섰다.  




지난번 '2023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짧은 순간이지만 내게는 오랜 인연으로 남게 될 김민하 시인을 만났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안녕으로 건넨다>(꿈공장플러스, 2022)에 담겨 있는 시인의 시로써,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라며 완벽한 내 딸아이에게 사랑 고백을 해본다.

                      

완벽하다     

 

어떤 꽃은 향기가 없었으나 완벽하였다

어떤 나무는 꽃이 없었으나 완벽하였다

어떤 새는 날지 못하였으나 완벽하였다     


모든 것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완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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