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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oo Aug 04. 2023

데스크 보드의 <사서윤리선언>과
동고동락한 세월

햇병아리 사서가 어미 닭이 되는 시간-열일하는 무적 사서 은주 이야기

<사서윤리선언> 훑어보기.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다. 직업마다 고유의 직업윤리가 있을 것이다. <사서윤리선언>은 사서로서 갖춰야 할 직업의식과 소양에 대한 내용을 담은 말 그대로 사서를 위한 직업윤리다.




모두 7개의 주문에 각 항목마다 4개씩 행동수칙을 달아놓은 것으로, 한국도서관협회에서 1997년 10월 30일에 제정했다. 2019년 2월 18일에 몇몇 내용을 손보고 새롭게 제정한 수정본과는 내용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고, 명칭도 <도서관인 윤리선언>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 속에 흐르는 기본 정신은 일맥상통한다.


수정된 <도서관인 윤리선언>에서는 삭제된, 세부사항이 있는 <사서윤리선언>을 여전히 업무용 책상 데스크 보드에 붙여 놓고 들여다본다. 이 직업윤리선언은 사서로서 현재 나의 위치와 책무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데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한다. 내용을 살펴보면, 모두 7개의 주문은 다음과 같다. 

by eunjoo [데스크 보드의 사서윤리선언]
사서윤리선언 7개 주문


1. 사회적 책무

  도서관인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이 보장되는 민주적 사회발전에 공헌한다.


2. 자아성장

  도서관인은 부단한 자기계발을 통하여 역사와 함께 성장하고 문명과 더불어 발전한다. 


3. 전문성

  도서관인은 전문지식에 정통하며 자율성을 견지하여 전문가로서의 책임을 완수한다. 


4. 협력 

  도서관인은 협동력을 강화하여 조직운영의 효율화를 도모한다. 


5. 봉사 

   도서관인은 모든 국민에 헌신하는 자세로 봉사하고 도서관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유도한다. 


6. 자료 

   도서관인은 지식자원을 선택, 조직, 보존하여 자유롭게 이용케 하는 최종책임자로서 이를 저해하는 어떠한     간섭도 배제한다.


7. 품위 

   도서관인은 공익기관의 종사자로서의 품위를 견지한다.  




1990년 2월, 정부출연기관에서 새내기 사서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했다면 34년의 세월을 사서로 살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두 곳의 직장을 거쳤고 현재 일하는 곳이 정년을 맞이할 마지막 직장이지 싶다. 이런저런 이유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지만, 그때마다 감사하게도 안식년 같은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첫 직장에서 6년, 두 번째 직장에서 11년, 지금 직장에서 12년째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쳐갈 때쯤 중간중간 쉬는 시간을 가졌다. 첫 직장을 퇴사하고 곧바로 미국 미네소타로 유학을 떠나 3년을 보냈다. 두 번째 직장을 퇴사했을 때는 2년 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과 배우고 싶었던 것들에 마음껏 시간을 썼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나, 항상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지지해 준 든든한 후원자인 가족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재취업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지만, 그 시간들은 고스란히 지금껏 내 삶의 자양분이 되었다.




열심히 달리기만 할 때는 주위를 둘러볼 수 없었다. 그때는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다. 달리기를 멈추고 숨을 고르고 땀을 닦으며 바라본 세상은 너무나 다채로웠다. “이런 세상이 다 있다니!!” 새로 알게 된 신기한 세상을 들여다보니, 예전에 한 기업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정말 세상은 무지무지 넓고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했다. 기왕에 한번 왔다 가는 인생, 이 넓은 세상에서 한번 제대로 살아보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 다짐이 <사서윤리선언>을 데스크 보드에 붙여 놓고 내가 매일 아침 읽는 이유다. 국민의 알 권리를 실현하는데 기여하며 정보접근의 평등권을 확립하고 성숙한 지식사회를 열어가는 문화적 선도자로서의 사회적 책무와 자신을 개선하는데 게으르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정진함으로써 자아성장을 이루고, 직업인으로서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문.


협력과 이용자의 다양한 요구에 적합한 전문적 봉사, 민족의 문화유산과 사회적 기억을 담고 있는 자료를 지켜내고 이용자와 관련된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공개를 강요받지 않는다는 자긍심과 책임, 공익기관 종사자로서 정직하고 당당하며, 정당하지 않은 일체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고 전문가로서 긍지와 품위를 지녀야 한다는 주문. 




이 7가지 주문들과 28개의 세부 항목들과 동고동락한 세월이 어느새 10년을 훌쩍 넘겼다. 사서 20년 차였던 내가 햇병아리에서 이제는 제법 사서라는 직업의식을 지닌 어미 닭이 되어가고 있다. 고맙게도 올봄에 사서로서 내 이야기가 담긴 책이 출간되었다. <사서 어떻게 되었을까?>(캠퍼스멘토, 2023)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한 ‘인생 선배로서 청소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한 마디’를 인용하며 마무리하겠다.


우리는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갑니다. 인생에서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봐요.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흔들리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갔으면 좋겠어요. 스티브 잡스가 이런 말을 했죠.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엄청난 열정을 품고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정말 중요한 사실입니다. 언젠가 자기가 하는 일에 정말 힘든 순간이 올 때 내가 내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일을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p.75)           

by eunjoo [사서로서 내 이야기가 담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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