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시골에 내려온 뒤, 인간관계가 넓은 바다에서 좁은 개울로 변했다.
친구들과 만남 포함 연락은 거의 횟수 ‘0’에 수렴했다.
카톡과 전화보다는 멀리서라도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나의 가치관도 있고, 일에 빠져 살아서라는 이유도 있으며, 서울에서 활개 치는 친구들의 얘기를 들으면 내가 괜히 작아져서 안 하는 것도 솔직히 있다.
진정한 애정과 뼈 아픈 열등감이 모순적으로 합쳐진 다소 복합적인 이유들이다.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주기적으로 뵈러 가게 되었다.
할머니 집과 우리 집은 차 타고 30분 거리.
심리적 거리는 멀지도 그리 가깝지도 않았었다.
“넌 언제 결혼할래? 아랫집 손녀 가영이 기억하지? 벌써 결혼한다더라. 걔는 배도 타고 남편도 배를 타고...”
가영이 결혼, 가영이 남편, 가영이 직장...
이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가영이 얘기를 죽죽 듣는데 못 참았다.
순하다는 평을 들으며 무난한 성격인 내가 처음으로 할머니께 발끈했다.
“걔는 걔고 저는 저예요.”
생각해 보니,
할머니는 내가 행복하길 바랄 텐데 ‘얘가 결혼을 못 해서 행복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 얘기한 것일 테고.
생전 그 특별한 이벤트를 눈에 담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결혼을 할 수는 없다.
할머니가 결혼해서 엄마가 있고, 엄마가 결혼해서 내가 있다는 거 아는데.
아무튼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큰 거사고, 요즘에는 강제성이 없고, 더더욱 미루게 되고.
창가에 앉으신 할아버지는 귀가 들리지 않아 멍하니 보다가 씩 웃으셨다.
아무튼 결혼을 해서 가족이 생기고 아이도 낳으면 ‘혈연’이라는 것도 생긴다.
대단히 끈질기고 단단한 인연이다.
아는데.
“누구나 미뤄. 누구나 당장 못한다고 해. 그러니까 그냥 하라는 거야.”
라는 말을 누가 한다면
“...”
답할 수가 없다.
그리고 시골에 내려온 지 1년.
정말 딱 1년 하고 한 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가슴을 물체화 할 수 있다면 한 구석이 사라진 것 같았다.
할머니의 눈물을 처음 봤다.
60년 세월의 정이 뭔지, 싸움과 투닥거림도 정이었다는 것을 처음 실감했다.
이후로 난 엄마, 이모들, 삼촌과 할머니의 집에서 이틀을 잤다. 아예 할머니를 우리 집에 모셔오고자 했지만, 워낙 대장부 성격에 팔팔하신 할머니는 우리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잠깐 할머니가 집에 오셨었고.
엄마가 엄마의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엘리베이터 아래 버튼 누르라니까! 내려가요~ 하는 거잖아!”
“깜빡했어. 아래를 눌러야 하는지, 위인지.”
아파트에서 내려가는 방법도 모르셨다.
가족 구성원이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사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셨다.
경로당에서 밥을 드시고, 쓰레기 줍는 동네 미화 알바를 하시며, 밭일을 하신다.
나.
요즘 할머니한테 그냥 전화를 건다.
이렇게 막 이유 없이 걸어본 적이 없는데도.
- 그래서! 왜 전화했어!
“그냥 할머니 보고 싶어서.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죠.”
- 꼬부랑 굽어서 기어 다니는 다 늙은 노인을 뭐가 보고 싶어. 그래도 고마워. 고마워요.
할머니는 나랑 대화하면 본인의 결에서 그나마 조금 더 순해지시는 것 같다.
나만의 착각인가.
예전에는 할머니 집 가는 게 부담도 되었었다.
어른들을 대하는 게 내향적인 나에게는 기운이 풍선 바람 빠지듯 나가는 일이라서.
하지만 지금은 자주 가고 싶다.
할머니랑 놀고 싶다.
“할머니는 참 재밌어.”
40년생 할머니와 MZ세대인 난 생각보다 대화가 잘 된다.
물론 발끈하고 의견 충돌도 있고 기분 상하는 때도 있지.
가영이랑 비교도 대뜸 하시지 않나.
어느 날.
아파트 계단을 올라오며 생각해 봤다.
“그럼에도 할머니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저 혈연이라서일까?”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그러는 건. 너무 얄팍하게 맹목적인 게 아닐까?
요즘 세태는 혈연만으로는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의 같다.
결혼의 강제성도 약한 만큼, 얽매이는 것에 대한 고통이 덜한 시대.
그렇잖아, 뉴스나 주변 이야기들을 봐도.
도움은 주고받으나 발길과 목소리가 서서히 무심해지는 양상들.
“어쩌면 그럴지도. 내가 할머니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유는 피뿐일 수도 있어.”
하지만 좋았다.
그렇게라도 이유가 생기니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겠네. 그냥 할머니는 할머니니까 전화드리고 만나고 놀고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의 행복을 빌면 되는 거야.”
굳이 이유를 머리 싸매고 쥐어짜서 찾지 않아도 된다.
변하리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좋으면 좋은 이유를 굳이 캐지 않아도 될 편안함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전제가 있다.
모든 혈연이라도 막 사랑한다고 막 가까이 두면 데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떤 관계든 마찬가지.
고슴도치들도 서로의 가시를 인정하고 거리를 둔다.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사랑했고, 사랑한다.
그래서 자주 전화 드리고 보고 싶다.
그 이유는 혈연이라서다.
그냥이다.
#. 오늘의 드라마 명대사 <폭싹 속았수다>
"내가 뭐가 좋아."
"엄마니까. 엄마니까 좋지. 말이라고 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