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행복에는 관성이 존재한다(3-5)
작년에 일자리 사업에 선정되었다. 일정기간 직원급여의 90% 지원해 주는 사업이었다. 사업의 취지는 이직을 위한 교육이었다. 일종의 인턴 과정이었다. 청년 실업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에서 급여를 지원해 줄테니, 회사는 계약 기간 동안 직원을 교육시키고, 채용된 직원은 회사에서 배워 경력을 쌓고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른 회사로 이직하라는 말이었다.
매출은 없었지만, 일자리 사업 취지가 마음에 들었다. ‘직원도 뽑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신청했고 선정되었다. 채용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 그대로였다. 내 머리 속 이상과 현실이 그리 다르다는 것을 첫 스텝부터 깨달았다. 일자리가 부족한 이 시대에 채용 공고만 내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 많은 지원서 속에서 옥석을 가리는 작업이 힘들 뿐, 지원자 모수 자체는 충분할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현실은, ‘아무도 안 온다’였다. 지원 자체를 안한다.
지원자 입장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다. 고용 기간도 짧고, 월급도 최저 임금에, 회사는 대표 혼자, 일하면서 성장이 기대되는 회사도 아니고 나중에 이직할 때 이력서에 쓸 만한 회사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니 지원을 안한다.
채용 시장에 기업이 ‘갑’이고 지원자가 ‘을’이라는 이야기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해당되는 말이다. 영세한 스타트업은 지원자가 ‘갑’이고 기업이 ‘을’이다. 지원해 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하다. 그래서 바로 방향을 틀었다. 알바 천국이나 알바몬에서 집에서 쉬고 있는 학생들 - 복학대기자나 휴학생들을 대상으로 공고를 올리고 연락을 돌렸다. 그래도 없다.
마지막으로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탁했다. 단기간 일 없는 회사에서 일할 사람을 구한다고 아는 사람 소개 시켜달라고 했다. 겨우겨우, 내가 정한 채용 데드라인 날에 지인으로부터 고졸 지원자를 소개 받았다. 내가 당시 뭘 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이력서에 이름과 주소, 그리고 학력&경력란에 딱 한줄, “OO 고등학교 졸업”이라고 쓰여 있는 지원자를 뽑았다. 내가 평생 처음으로 뽑는 직원이다.
처음 창업한 대표들은 직원에 대해 환상을 갖는다. 직원과 함께 행복하고 즐겁게 고난을 뛰어 넘고 종국에는 성공한다는 뻔한 스토리다. 그리고 그 스토리가 현실에서 얼마나 처참하게 깨지는 지에 대해서는 그 사례를 넘치도록 듣는다.
나도 무서웠다. 첫 직원과의 관계가 앞으로 모든 직원과의 관계의 시금석이 될 것 같았다. 여기서 망하면, 나는 그 기억을 짊어지고 살게 된다. 다음에 직원을 채용할 때, 부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관점이 다음 직원과의 관계를 망칠 것 같았다.
그래서 기대치를 무지 낮추었다. 내 나름대로 최대한 낮추었다. 그리고 관계에 대한 컨셉을 고민했다. 어떤 자세로 접근해야 할 지로 생각했다.
나는 평생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다. 단 한번도 사원이었던 적이 없다. 학생 아니면 교원이었다. 그래서 가장 익숙한 인간 관계가 스승과 제자다. 나는 누군가의 제자였고, 또 누군가의 스승이었다. 때마침 일자리 사업의 취지가 직원에 대한 교육이었다. 직원이 커리어를 쌓도록 도우라는 말이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
직원 면접 때, 꿈이 뭐냐고 물었다. 직원은 개발자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일자리 사업에서는 교육비로 별도로 지원했다. 그 교육비로 IT교육을 받게 했다. IT개발자가 되기 위한 정보도 공유하고 창업 스쿨도 보냈다. 물론 일도 시키면서 교육 했다. 나는 일자리 사업 취지에 정말 맞게 했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나는 직원이 계약 기간이 끝나고 IT학원에 갈 줄 알았다. 그런데 직원은 계약 기간이 끝나는 마지막 주에 자기 대학에 합격했다고 전해 왔다. 수도권에 있는 컴퓨터 공학과에 합격했다고 했다. 놀랐다.
직원을 채용하고 얼마 후, 소개시켜 준 지인을 통해 전해 들었던 말인데, 직원에게 꿈이 생겼다고 했다.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아마 그게 IT개발자가 되기 위해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를 배우고 싶은 꿈이었던 것 같다.
나 때문에 직원이 대학에 합격한 건 아니다. 내가 직접적으로 도움 준게 없다. 국영수 공부를 도운 것도 아니고 수험를 독려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회사 생활에서 얻은 경험들이 직원의 진로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기뻣다.
퇴사일에 식사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직원은 자기가 처음 주도적으로 세운 목표(대학 합격)를 성취해서인지, 다음 목표-꿈도 그리고 있었다. 2년 후 무엇을 할 지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있었고 그 후에 무엇을 할 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그 직원은 잘할 것 같다.
나는 이 일을 기회가 있으면 자랑하고 다닌다. 자랑할 만한 일이다. 직원은 회사 생활을 통해 꿈이 생겼고, 이루었다. 더 나은 기회를 얻어 나아갔다. 내 회사에 다닐 모든 사람이 이랬으면 좋겠다.
첫번째 직원에 대한 기억은 좋은 기억이다. 서로가 해피엔딩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직원에 대한 기억은 그 사례 1건이 전부다. 그래서 100% 좋은 기억뿐이다. 나는 좋은 기억을 가졌기에, 두번째 직원에게 기대할 것 같다.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것 같다.
대표와 직원이 어떤 관계인지 나는 여전히 모른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평생 한 번도 회사에 다녀본 적이 없다. 직원을 채용해 나가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칠 것이다. 그래도 직원에 대한 “첫 번째”기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