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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애취애 Jul 26. 2022

학회상 - 한 여름밤의 꿈

5장 내가 특이한가? (5-7)

내가 이 세상에서 최고로 축복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한 여름밤의 꿈과 같은 학회 사무국 실수로 인한 해프닝이었지만, 나는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


내가 창업하기 전 마지막 직장에 채용되었을 때, 나는 로또 복권에 당첨된 줄 알았다. 그 직장에서 나는 그때까지 보지 못한 신세계를 경험했다. 그 프로젝트에서의 경험이 창업으로 이어졌다.


창업가에게 사업비를 지원해 주는  정부지원 사업에 선정되었을 때, 너무 기뻐서 방방 뛰었다. 커리어 전환을 아주 부드럽게 할 수 있어서, 또 사업에 필요한 자금 뿐만 아니라 교육과 멘토링을 지원 받을 수 있어서 기뻤다. 아이돌이 꿈인 소년, 소녀가 대형기획사 연습생에 합격했을 때의 마음일 것 같다.


그리고 창업을 결정하고 정부지원 사업에 선정되고 나서, 얼마 후 학회로부터 금년도 학회상에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매년, 가장 우수한 논문을 투고한 사람 1명을 선발해서 상을 수여하는데, 금년에는 그게 “나”라고 했다. “우와 이런 영광이!” 정말 영광이었다. 수상자는 그 기록이 학회가 없어질 때까지 남는다. 올림픽 메달 리스트의 이름이, 올림픽이 사라질 때까지 영원히 남듯이, 학회상 수여자는 학회가 없어질 때까지, 어쩌면 학회가 없어져도 아카데믹 세계에서 영원히 남는다. 


“상금은 사라져도 트로피는 영원하다”라는 말처럼 인터넷 검색을 하면 항상 내 이름이 나오고 비록, 학회의 수가 수천, 수만개일지라도 그 학회의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내 이름을 한 번쯤 들어보게 된다. 아카데믹 세계에서 종사하는 모든 이들에게 훈장과 같은 영예였다.  


‘내가 이래도 되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아카데믹 세계를 떠나 비즈니스 세계에서 활동할 사람이었다. 모든 학자들이 부러워할 이 영예는 다른 사람에게 더 필요할 것 같은데, 떠나는 사람이 받아도 되나? 라는 생각에 송구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최고로 축복받는 사람 같았다.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 김연아를 예로 들자면, 김연아가 금메달 따고, 로또 복권 당첨되고, 아이돌 하고 싶었는데 SM이나 JYP 연습생으로 발탁된다면 나와 같은 기분이었을까? 


큰 축복에 기뻐하며 감사에 취해 살았다. 그리고 2-3주 후, 학회 사무국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학회상 수상자를 행정착오로 잘못 통지해서 대단히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아카데믹에서 계속 활동할 계획이었다면, 많이 아쉬웠을 것 같았다. 훈장이 있느냐 없느냐로 내 앞길이 크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원망스럽지 않냐고 물었다. 별로 원망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해프닝으로 너무나도 기쁜 경험을 해 보아서 좋았다. 


꿈에서 경험한 감정은, 잠에서 깨어나도 그 잔향이 남는다. 나는, 꿈이란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일을 대신 경험하게 해 주는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믿는다. 꿈에서 우주를 날아 보았고, 거대한 해일 앞에서 가족과 함께 서서 어찌 할 바를 몰랐던 경험도 해 보았다.  하나님의 재림 심판 앞에 서 보았고, 사람도 죽여서 파 묻어 봤는데,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지만 내가 너무 괴로워했던 기억도 있다. 그때는 잠에서 깨어나 식은 땀까지 흘렸다. 정말 꿈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남자인 내가 꿈에서 임신을 해 보았는데, 배 속에서 생명의 고동이 느껴질 때의 그 경이로움이란 상상을 초월했다.  


잠에서 깨어나도, 살인의 죄의식, 심판의 두려움이 이어진다. 그 잔향이 남는다. 그런데 학회상은 현실이었다. 사무국의 착오였지만 그 몇 주간은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그 기간 동안 너무 영광이어서 어찌 할 바를 몰랐고 내가 이 세상에서 최고로 축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보냈다. 


한 여름밤의 꿈이었지만, 내가 느낀 행복감, 축복의 경험은 내게 남아 있다. 이런 경험을 해 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학회상을 받는 사람은 그 학회에서 매년 한 사람뿐이니, 정말 극소수의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경험일 것이다. 올림픽은 4년마다 열리고, 종목당 한 사람만이 금메달을 딴다. 그 경험을 해 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게 꿈이라고 해도, 그때 느낀 경험이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아니다. 그 자리에서 느끼는 성취감, 고양감, 충실감 등이 남는다. 정상에 서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맛 본다. 물론 단 몇주간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느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잘 풀리는 사람을 보게 되면, 어떤 기분일 지를 상상해 본다. 상상해 볼 수 있는 것도 축복이고 감사할 일이다. 내 감정 경험의 지평이 넓어졌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학회상 사건은 좋은 해프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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