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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경이는 경이다

둘째 콤플렉스 극뽁!

by 디카페인라떼

아이는 오른쪽 송곳니 즈음을 이용해 빵을 우와앙 깨문 다음에 어금니 쪽으로 밀어 넣고 오물오물 씹는다. 그 과정은 아주 신중하고 진지하다. 맛을 음미하는지 미간을 살풋 찌푸리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입맛만큼은 여느 파리지앵 못지않은 아이는 하루에 크로와상 한 개 정도는 거뜬히 먹어 치운다. 소라 모양의 빵의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씹고 뜯고 맛보는 모습을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경이롭게 바라본다.


어떤 존재가 그냥 숨만 쉬어도, 가만히 빵만 먹어도, 중간에 우유를 쭙쭙 빨아들이는 모습만 봐도 한 편의 cf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마음이 일렁일 수 있다는 건 퍽 기이한 경험이다.


예부터 선조들이 이르시길 사랑하는 이의 섭식을 보며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고들 하시는데 그건 상대의 먹방에 진심으로 동참해서임을 이제는 안다. 아이가 두 손으로 빵을 집어 입에 넣고 적당히 질고 부드럽게 되도록 씹어서 꿀꺽하는 모든 순간에 나 역시 동기화되어 있다. 아이가 먹을 때 나도 덩달아 입이 벌어지는 것도 중간에 목이 멜까 싶어 얼른 빨대 꽂은 우유를 내미는 것도 같은 이유다. 실제로 아이의 포만감도 함께 느끼는지 얼마간은 배가 고픈지도 모른다. 네가 웃으면 나도 좋은 걸 지나 네가 먹으면 나도 배부른 그런, 다음 단계가 있다.


나의 언니는 아이를 낳고 아이의 신생아 시절 손목에 무리가 왔다. 출산 직후에는 뼈마디가 모두 느슨하게 벌어진 상태라 손목은 통증에 취약하다. 병원에 간 언니는 물리치료를 받다가 문득 눈물이 핑돌았다. 아파서가 아니었다. 당시 하루 대부분을 누워있던 아이가 종일 보는 풍경이 이런 천장이겠구나 싶어서 였다고 한다. 치료 중에도 언니 마음은 온통 조카였다. 역지사지 이심전심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있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전혀 모르던 세계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말, 네가 나고 내가 너라는 고백, 그저 감흥 없이 느끼한 경구인 줄만 알았는데 이건 실제상황이었다. 그걸 몰라서 한 귀로 흘려들었다.


그러니까 첫 아이가 선사하는 세상은 이렇게 신세계다. 나는 아이를 통해 뜻밖에 둘째 콤플렉스를 치유하고 있다. 부모에게 첫 아이의 의미가 그런 것이라면 그건 둘째는 범접할 수 없는 그런 세계가 있는 거다. 부모들이 첫아이 이름을 따서 아무개 엄마 아무개 아빠라 불리는 것도 이제는 이해한다. 그건 이름을 바꿀 만큼 새로운 정체성이니까.


둘째라고 예쁘지 않을 리 없겠지만 처음이 주는 임팩트를 이기긴 어렵다. 두번째라 여유가 생겨서 더 예쁘고 귀여울 수는 있지만, 더 너그럽고 숙련될수도 있지만 이미 경이롭기는 어렵다. 경이는 경이인 것이다.


나는 가끔 잠든 아이의 얼굴을 말끄러미 바라보곤 하는데 자다가 돌아 눕는 것도 뽀도독 이를 가는 것도 짧은 팔로 기지개를 켜는 것도 경이롭다. 아이는 이렇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충분하다. 너는 지금 그런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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