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6. 잘한다 잘한다 자란다

너의 뉴런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니

by 디카페인라떼

칠 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어른을 알고 있다. 여섯 아이를 기르기에도 이미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생각지도 못한 잉태라 태중에서도 고난이 많았다 들었다. 세상 나와서도 고생길이 뻔하니 그의 어머니는 이를 악물고 산등성이를 구르기도 하고 간장을 마시기도 하셨다고.


하지만 일곱째 아이는 우렁차게 울며 세상에 태어났고 거의 누이들의 손에 크며 형님들에게 치이며 자랐음에도 기골이 장대하고 머리가 비상하며 유머와 여유까지 겸비한 멋진 어른이 되었다. 얼마 전에 그 어른의 따님의 혼사에 다녀왔는데 코로나 시국임에도 쓸쓸하지 않은 마음까지 따스한 결혼식이었다. 그동안 살아온 씀씀이가 경조사에 드러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이를 키우며 줄곧 궁금한 건 어디까지가 타고나는 것이고 어디부터가 후천적인 것인가 하는 점이다. 어느 집에 몇째로 태어나 어떤 보살핌을 받으며 크는가는 그렇게 결정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례를 보며 안심하다가도 한 번씩은 생각한다. 내가 아닌 다른 엄마에게서 컸다면 아이는 다른 아이가 되었을까. 아니면 지금과 다름없이 비슷하게 자랐을까.


신생아 때는 100일까지의 경험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들었다. 특히 애착형성에 있어 그렇다. 24개월까지는 훈육하기보다는 받아주라고 배웠다. 무엇보다 36개월까지 인간의 뇌에 대부분이 만들어진다고 하니 그때까지의 경험이 아이의 뉴런이 만들어지는데 결정적이어서 다.


22개월을 지나는 아이의 뉴런은 잘 만들어지고 있을까. 아이가 가지고 태어난 세포 속에는 어떤 내용들이 새겨지고 있을까. 비슷한 개월 수의 아이가 이미 완성형 문장을 말할 때나, 기저귀를 떼었을 때, 숫자나 글자를 읽을 때, 놀이터에서 남다른 몸놀림을 보여줄때 ..나는 속으로 긴장한다. 하지만 이내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 나의 조바심을 아이가 알게 하지 말자고. 아이는 나를 닮아 운동신경이 없는데 내게는 없는 조심성이 있다. 집에서도 바닥에 구르는 장난감을 밟고 콩콩 뛰는 건 나지 아이가 아니다.


조심성 있고 순발력 없는 아이는 나름의 속도로 자란다. 좀 느리면 어떤가. 나는 아이가 세상에 가지고 온 자신의 몫, 이 아이가 가지고 태어난 속도에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속도에 액셀을 밟거나 브레이크를 누르는 게 아니라 주변의 지형지물을 파악하고 안전벨트를 채워주는 일이겠지.


우리 집의 첫째든 그 옛날 칠 남매의 막내든 아이는 자라고 자라서 어른이 된다. 나는 아이가 알아서 큰다는 말을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아니 먹고 자고 싸고 씻고 중에 하나도 스스로 못하는데 어떻게 스스로 크냐고요) 내 눈앞의 아이와 내 주변의 어른들을 보며 알아가고 있다. 다른 이에게 갔다면 다르게 자랐을지 모를 아이는 우리에게 와 우리 아이가 됐다. 나는 다만 잘한다 잘한다 하면 아이는 자란다 자란다 하겠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