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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손가락이 닮았네

북치기 박치기의 삶

by 디카페인라떼

손끝이 여문 사람이 있다. 일머리가 좋아서 마무리가 단정하고 깔끔하다. 힘을 주어야 할 때와 빼야 할 때를 잘 아는 것은 물론이다. 내게는 없는 센스 이기도하다. 손끝이 느슨한 사람이 아이를 키우면 여러 난관에 봉착한다.


안 그래도 옷 갈아입기 싫어하는 아이의 옷의 앞뒤를 뒤집어 입히기도 하고 (브랜드마다 앞뒤를 구분하는 방식이 다르다, 통일해달라 통일해달라!) 아이의 음료가 든 물통의 뚜껑을 꽉 조여 닫지 않아 기저귀 가방이 흥건해지기도 한다.


아이와 산책을 나가면 나나 아이나 모두 옷에 색연필이며 간식의 잔해가 묻어 있고, 착장의 위아래도 제각각일 때가 많은데 완벽한 세팅으로 외출한 다른 엄마와 아이를 보면 괜스레 겸연쩍다. 아니 엄마가 저렇게 머리에 여러 개의 끈을 묶고 모양을 잡을 동안 아이가 가만히 있었단 말인가. 개월 수가 얼마 차이가 안나 보이는데 옷이 왜 저렇게 말끔하지. 하나도 안 흘리고 먹는가.


사실 안다. 그건 엄마의 역량에 달려 있다는 걸. 우리 아이가 머리 묶는 걸 싫어하는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손끝에 힘이 잔뜩 들어가 속도도 완성도도 느린 내 탓일 것이다. 내손이 닿기 전부터 ‘아포 아포’ 하고 도망치니까. 언젠가 욕실에서 세수를 하려고 아이의 작은 고무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어본 일이 있는데 묶을 때는 물론이고 뺄 때도 머리가 뜯기는 느낌이라 깜짝 놀란적이 있다. 매일 이 고통을 견딘 거였구나.


그래서 아이는 거의 더벅머리 상태로 잠옷과 외출옷이 믹스 매치된 착장으로 산책을 나선다. 성별을 알 수 없고 이 상태로 얼마나 멀리 가도 될지 애매한 상태다.


가끔 아이의 블록 쌓기를 지켜볼 때가 있는데 각 블록 사이의 연결이 엉성해서 조마조마할 때가 있다. 끝까지 야무지게 끼워야 다음 블록이 튼튼하게 올라가는데 첫 블록부터 헐거우니 부실하게 쌓인 블록은 곧 최후를 맞는다. 아이는 블록이 휘청댈수록 힘을 주어 블록을 누르는데 이미 힘을 주어야 할 타이밍을 놓친 뒤다. 그 안타까운 과정이 남일 같지 않아 나도 같이 애가 탄다.


그러니까 아이는 내 손을 닮은 셈이다. 이런 것도 닮다니. 지금은 내가 나이와 짬이 있어 아이의 눈에는 좀 더 나아 보이겠지만 곧 알게 되겠지. 이 부실한 손가락의 기능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뭔가를 계속 잃어버리거나 지속적으로 망가뜨리거나 부속의 일부를 누락시키는 나의 손을 보며 남편은 여러 번 당혹스러워했다. 모든 치들은 어떤 면에서 한 길에서 만난다. 기계치는 길치고 몸치고 박치고 그렇다. 북치기 박치기의 삶이다. 남편의 얼굴에는 종종 ‘도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온 거야’라는 물음표가 뜬다. 그 눈빛에 나는 ‘정말 얼마나 고단한지 몰라’라고 속으로만 답한다. 설마 일부러 그러는 거지?라는 반문은 애써 모른척한다. 이게 최선이라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아이도 나와 비슷한, 인생에 지름길이라고는 없는. 엉성하고 느슨한 길을 걸으리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지만. 돌고 돌아가는 인생도 뭔가 얻는 게 있다고 미리 스포일러를 해둔다. 이를테면 작은 일에 감사한 마음, 아무것도 당연한 게 없다는 걸 아는 겸손함?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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