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 속 '거북 도상'의 변화와
상징 이야기 (10)

문헌 속의 거북(2) - 수호신으로서의 거북

by 연아 아트

문헌 속에서 거북은

'수호신'으로서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거북’은 고대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

무너진 하늘 기둥(天柱)을

‘거북’의 네 다리로 떠받들어

세상의 어지러움을 잠재웠다는 내용이

『회남자』「남명훈」, 『논형』「담천(談天)」,

『박물지』「여와보천」편에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회남자』「남명훈」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먼 옛날에

사우(四隅)의 기둥이 허물어지고

구주(九州)의 땅은 조각조각 찢어지며,

하늘은 모두 덮지 못하고,

땅은 다 싣지 못하며,

불은 무시무시하게 타면서

퍼지고 꺼지지 않으며,

홍수는 끝없이 퍼져나가면서 멎지를 않고,

맹수는 양민을 마구 잡아 먹으며

맹금(猛禽)은 노인과 아이들에게 덤벼들었다.

그래서 여와(女媧)는

오색 돌을 다듬어

창천(蒼天)을 보수하고

큰 거북의 다리를 잘라서

사우(四隅)의 기둥을 세우고

흑룡(黑龍)을 죽여

기주(冀州) 땅을 수재에서 구해 냈고

갈대를 태워

그 연기로 홍수를 멎게 했다.

이렇게 창천(蒼天)은 보수되었고

사우(四隅)는 정비되었으며

홍수는 말랐고

기주 땅은 평온하게 되었으며

간교한 조수(鳥獸)는 죽어 사라졌고

양민은 다시 삶을 되찾았다.


『논형』「담천(談天)」의 기록을 보면,


유가의 서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공이 전욱과 천자의 자리를 두고

싸웠지만 패했다.

화가 난 공공은

부주산(不周山)을 들이받아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을 부러뜨리고

땅의 사방을 잇는 그물망을 끊었다.

여와(女媧)는

오색 돌을 녹여 하늘을 수선하고,

거북의 다리를 잘라

땅의 네 귀퉁이를 세웠다.

그런데 하늘의 서북쪽 모서리가 부족해

해와 달이 그쪽으로 이동했고,

땅의 동남쪽 모서리가 부족해

온갖 하천이 그쪽으로 흐르게 되었다."


『박물지』「여와보천」편의 내용을 보자.


천지에는 처음에는 발(足) 없었다.

그래서 여와씨가 오색을 돌을 단련하여

이를 가지고

그 허물어진 곳을 기웠으며

큰 자라의

다리를 잘라 네 극(極)을 괴었다.

그 뒤

공공씨와 전욱이

제왕의 자리를 놓고 다투다가

그만 노해서

부주지산(不周之山)을 들이받아

천주(天柱)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그 때문에 땅의 힘줄이 끊어져버렸다.

그리하여 하늘은 서북쪽으로 기울고

일월성신(日月星辰)이 그 쪽으로

쏠려 돌게 된 것이며

땅은 동남쪽이 채워지지 못하여

모든 물들이

동남쪽으로 흘러들어가게 된 것이다.


위의 내용을 다시 한번 풀이해보면 다음과 같다.


공공과 전욱이 천자를 자리를 두고 싸워

공공이 지게 된다.

이에 화가 난 공공이 하늘과 땅을

받들고 있는 기둥을 부러뜨리게 된다.

이 부러진 기둥으로 인하여

세상은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세상은

홍수가 발생하고 산이 무너지는 등

대혼란이 일어나게 된다.

중국에서 창조의 신으로 알려진 '여와'는

오색돌을 녹여 구멍난 하늘을 메우고,

거북의 네 다리를 잘라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삼았고,

그 이후 세상은 평안해졌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거북은

세상의 어지러움을 해결하는 해결사,

또는 '수호자'로 무거운 하늘을 떠받들고 있다.

그리고 튼튼한 네다리는

아무리 무거운 것도 거뜬히 들 수 있는

'견고함'을 상징하고 있다.


또한 바다 위에서

아무런 지주 없이 떠 다니는

동방의 '삼신산'을

‘거북’이 떠받침으로써

흔들림없이 안정되게 된다.

즉 신선계(神仙界)를 지키고 있는

'수호자'로서의 모습이

『열자』「탕문」에 나온다.


발해의 동쪽으로

몇억 만 리나 떨어져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곳에 큰 구렁이 있는데

실은 밑바닥이 없는 골짜기입니다.

그 아래엔 바닥이 없어서

그곳을 귀허(歸墟)라 부릅니다.-중략-

그 가운데에

다섯개의 산이 있는데

첫째는 대여(岱與)요, 둘째는 원교(員嶠)요,

셋째는 방호(方壺)요, 넷째는 영주(瀛洲)요,

다섯째는 봉래(蓬萊)입니다.–중략-

우강에게 명하여

큰 자라 열다섯 마리로 하여금

머리를 들고

그것들을 이고 있도록 했습니다.

다섯 마리씩 세 짝을 지어 교대를 하는데,

육만년에 한번 교대하도록 했습니다.-중략-

용백(龍伯)의 나라에는 거인이 있어서–중략-

한 개의 낚시대로

여섯 마리의 자라를 연이어 낚아서–중략-

먹어 치웠습니다.

이에

대여와 원교의 두산은

북극으로 흘러 내려가

큰 바닷속에 가라앉아 버려,

그곳으로부터 옮겨 오는 신선과 성인들이

수억이나 될 정도였습니다.


위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발해의 동쪽 어딘가

신선이 사는 5개의 산이 있고

이 산의 이름은 대여, 원교, 방호(방장), 영주, 봉래산이다.

이 산들은 지주가 없어

파도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표류하고 있어

신선들은 매우 불안정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래서 15마리 자라의 머리로

섬을 떠받치게 되면서

이 5개의 산은 더 이상 표류하지 않게 되었고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그런데 용강의 거인이

'대여산'와 '원교산'을 받치고 있던

'6마리의 자라'를 잡아 먹어버리면서

'대여산'과 '원교산'은 떠내려가게 되면서

바다 속에 가라 앉아 버리게 된다.

결국 방호(방장), 영주, 봉래산 이렇게 3개의 산만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오신산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신산'이 되었다.


이 삼신산은 '진시황'과 '한무제'가

불로장생의 명약을 찾아헤메던

동방의 낙원 '삼신산'을 의미한다.


그 밖에 '초사' 「천문」에서

‘바다거북은 산을 지고 사지를 움직이는데,

어떻게 안정되게 산을 지탱할 수 있나?’라는 구절이 나오며,


후한 왕일이 '초사' 「천문」에 주를 달면서,

‘거령이라는 거북이

바닷속에서 봉래산을

등에다 지고서 춤을 추며 논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산을 지고 손뼉을 치는 거북.jpg <청나라, 소운종, '천문도', 산을 지고 손벽치는 거북 '거령'>


이렇게 거북은

자신의 몸의 몇배나 되는지 알 수 없는

무거운 하늘이나 산 같은 것을 떠받고 살면서

천지에 평화를 가져다주고 있다.


거북의 이러한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도 ‘귀부(龜趺)’라 하여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로 오래전부터 사용되었다.


또한 집을 짓고 상량(上樑)할 때

대들보에 ‘하룡(河龍)’, ‘해귀(海龜)’라는 문자를 써넣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았을 때,

거북은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어떤 중요하거나 무거운 것을 지고

지탱해줄 수 있는,

수호자로서의

힘 있고 신령스러운 동물로도 인식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대웅전.png <불영사 대웅전> 출처 : https://cafe.daum.net/sunbi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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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기단 거북.png
불영사 대웅전 거북 기단 출처 :https://cafe.daum.net/sunbi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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