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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슬비 Mar 27. 2023

민화 속 '거북 도상'의 변화와
상징 이야기 (18)

고려시대의 거북(1)-벽화

    신라의 삼국통일 후 벽화고분은 한동안 조성되지 않다가 고려 왕조가 들어서면서 석실 벽화분의 전통이 되살아났다. 


    고려시대 벽화고분은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총 22기'이며, <사신도>가 그려진 것은 태조 현릉(顯陵), 개풍 수락암동 1호분, 안동 서삼리 벽화고분, 법당방 1호분, 명종 지릉(智陵)까지 총 5기이다. 


    고분벽화의 주제는 고구려의 전통을 이어받아, <사신도>와 별자리 그림(星宿圖) 등이 나타나나, 이전의 표현과는 다른 특징을 보이며,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과 같은 소재들이 새롭게 등장했다. 


    불교를 숭상하던 고려에서는 주로 화장(火葬)을 하여 큰 분묘가 필요 없었지만, 왕실을 비롯하여 귀족층에서는 여전히 큰 석실묘를 조성하고 그 안을 벽화로 채웠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왕릉은 몽고 항쟁 시기를 제외하고, 왕릉의 대부분은 수도였던 '개성'에 조성되었다. 


   귀족층의 분묘 역시 개성 부근에 모여 있어, 지금의 우리로서는 고려시대 고분벽화의 전모를 알 수 없다. 

   현재 남한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고분들은 고대의 고분과 비교하면, 크기가 현저하게 작아서 지방 세족의 묘로 추정되며, 고려시대 벽화 중 우리나라(남한)에서 유일하게 <사신도>가 그려진 고분이 안동 ‘서삼리 고분’이다.


      안동 ‘서삼리 고분’은 경북 안동시 녹전면 서삼리 산 204에 소재하고 있고, 조성 시기는 11세기에서 12세기 초로 추정된다. 


     돌덧널무덤 구조로 네 벽에 <사신도>와 <인물도>를 그리고, 천장에는 별자리 그림을 그렸는데, 고구려 고분벽화의 <사신도>는 벽면 전체를 꽉 채우는 크기로 시선을 압도했다면, ‘서삼리 고분’의 <사신도>는 벽면 크기에 비해 작게 그려진 것이 특징이다. 


    벽화 위치는 석실 벽면과 천정에 있으며, ‘현무’는 북벽에 위치에 무덤 입구를 향해 정면으로 그려진 모습이다. 머리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응시하고 있으며, 두상은 ‘사두형’으로 목이 길게 빠져나와 있다. 배갑의 무늬는 물고기 비늘 모양으로 표현되었으며, 눈은 동그랗게 귀엽게 그려져 있다. 

<안동 서삼리 현무>
<안동 서삼리 고분벽화 현무 모사도>


    뒤쪽으로 보이는 삼각형 형태는 산이나 바위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현무’가 정면으로 앉아 있는 모습은 고려시대 석관에서도 보이며, 고구려 고분벽화나 그 이후의 벽화에서도 볼 수 없는 매우 드문 예로, 이 시기 <사신도> 양식의 하나로 추측된다. 


     안동 ‘서삼리 고분’만으로는 고려시대 거북 도상의 특징을 특정 지우기는 한계가 있어, 벽화를 대신하여 고려시대 유행했던 ‘석관’에 나타난 거북 도상을 다음 장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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