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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슬비 Apr 24. 2023

민화 속 '거북 도상'의 변화와
상징 이야기 (22)

조선 전기 벽화 속의 거북(2)

    조선 1462년 세조 2년에 조성된 원주 ‘동화리 노회신 묘’는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동화3리 산68-2에 소재한다.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석실 내 벽화가 되었다. 

    <노회신 묘>는 경남 밀양 고법리 벽화묘(송은 박익, 1332-1398)에 이어 벽화가 그려진 두번째로 발견된 조선시대 벽화묘이지만, 현재까지  <사신도>가 그려진 벽화묘로는 유일하다.

   

     묘주는 충정공 노회신(1415-1456)으로 교하 노씨 15손으로, 여흥도호부사 겸 권농병단련부사를 역임하였으며, 노회신의 어머니가 심온의 딸로, 소헌왕후(세종대왕의 정비)와는 자매 사이였다. 즉 그는 세종의 조카로 왕실의 외척으로 상당한 지위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노회신 묘>는 하나의 봉분에 두 개의 석실이 연결된 합장묘로, 두 개의 석실 모두 벽화가 발견되었다. 

   1호 석실 벽에는 <사신도>와 ‘십이지신상’ 2구가 각각 그려져 있으며, 2호 석실 벽화에는 동서남벽에 <사신도>가 그려져 있고, 천장에는 천문도인 <성수도(星宿圖)>가 그려져 있다. 

  이 벽화고분의 특징은 석실 벽면에 <사신도>와 ‘십이지신상’이 병행되어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노회신 묘 구조도> - 출처 『남한의 고분벽화』
<노회신 묘 왼쪽부터 청룡, 주작, 백호>


      1, 2호실 석실 북벽의 ‘현무’는, 기존 ‘현무’의 모습과 다르게 그려져 있다. ‘현무’의 입에는 하늘을 향해 길게 모란꽃처럼 피어오르는 서기가 나오며, ‘거북’의 모습은 ‘실제 거북’의 모습으로 그려졌 있다. 거북의 등에는 연속된 육각형의 귀갑문이 뚜렷이 보이며, 벽화 속의 거북은 서기를 제외하고 보면 외양만으로는 ‘일반 거북’처럼 보인다. 

<1호 석실 북벽 현무>
<1호 석실 북벽 현무 모사도>
<2호 석실 북벽 현무>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었던, 거북의 몸을 휘어 감았던 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다른 <사신도>와 달리 거북의 뒤에는 산이 배경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는 고구려 후기 ‘강서중묘’와 ‘강서대묘’, 고려시대 안동 ‘서삼리 고분벽화’에 나타난 산악 표현과도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되어 진다.


    ‘노회신 묘’의 거북 도상 하나만으로는 고려 말에서 조선 전기까지의 현무 도상의 특징을 단정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초기에도 <사신도>가 그려졌으며, <사신도> 중 ‘현무’ 도상은 고려시대 석관에서처럼 ‘귀사합체’가 아니라, ‘거북 단독’ 형상으로 그려져 고려시대의 맥을 잇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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