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례에 관한 의궤』에 묘사된 '거북(현무) '도상 (4)
나. 거북 도상에 나타난 문양의 변화
『의궤』에 묘사된 거북 도상은 크게 세 번 문양의 변화를 보이는데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변화는, 거북 등의 ‘귀갑문’에서 나타난다.
처음 귀갑문의 형태는 육각형의 모양을 이루나, 선이 연속되지 않고 끊어지면서 모양을 이루고, 큰 육각형 안에 같은 식으로 작은 육각형을 이루는 모양을 반복한다.
이러한 문양은 1627년 『원종예장도감의궤』와 1659년 『효종대왕영릉천릉산릉도감의궤』에서 나타난다. 그 후 제작된 1631년, 1632년『선조목릉산릉도감의궤』, 『인목왕후목릉산릉도감의궤』에서는 테두리는 연속된 선으로 육각형을 이루지만, 육각형 안의 작은 육각형은 선이 끊어지면서 육각형 형태를 반복한다.
그러나 1649년∼1789년 『의궤』와 1805년∼1843년 『의궤』에서는 육각형의 테두리뿐만 아니라, 이 육각형 속의 문양도 연속된 선으로 육각형을 모양을 이루며, 가장 안쪽의 육각형에 ‘川’이나 ‘三’과 같은 모양으로 표현의 변화를 주고 있다. 외규장각 소장의 『단종장릉봉릉도감의궤』(1699년, 숙종 25)에서는 이전의 반듯한 육각형의 연속과는 달리, 오각형 또는 육각형이 길어진 듯한 모양으로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귀갑문이 단순해진다.
1757년 『정성왕후홍릉산릉도감의궤』에서 처음 ‘거북 단독형상’이 나타나면서, 귀갑문은 다시 조밀하고 정교해지며, 가장 안쪽의 육각형 안에 ‘三’과 같이 표현되어 진다.
1800년 『정조건릉산릉도감의궤』에서 귀갑문은 조밀하면서 육각형을 이루긴 하지만, 육각형 모양이 물고기 비늘 모양으로 겹쳐지는 모양으로 변한다. 그러나 1805년 『정순왕후원릉산릉도감의궤』에서 1843년 외규장각의 『효현왕후경릉산릉도감의궤』까지는 기존의 반듯한 육각형 모양으로 다시 회귀한다.
그러나 같은 해 제작된 규장각 소장의 『효현왕후경릉산릉도감의궤』에서는 다시 귀갑문이 『정조건릉산릉도감의궤』와 같은 형식으로 변화하면서, 이후 계속 이러한 모습을 유지한다.
육각형 겹침의 귀갑문 문양도 조금씩 변화하다가, 1863년 『철종예릉산릉도감의궤』에서 귀갑문의 뾰족했던 끝이 살짝 둥그스름해지기 시작한다. 장서각 소장의 1919년 『고종태황제산릉주감의궤』에서부터는 귀갑문 문양에서 거의 각이 사라지고 물고기 비늘 모양으로 변화하며, 1926년 『순종효황제산릉주감의궤』에서는 완전히 둥글어져 물고기 비늘 모양으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변화과정으로 보았을 때, 거북 등의 귀갑문 문양이 물고기 비늘 모양처럼 겹치는 표현이 정착한 것은 1840년대 이후이며, 또한 거북이 등장하는 회화에서 거북의 귀갑문 문양 표현, 즉 반듯한 육각형 → 육각형의 겹침 → 물고기 비늘 모양으로의 이러한 변화를 조선시대 거북 도상의 편년 근거로 삼아도 무방할 것 같다.
두 번째 변화는 거북다리 앞면 부의 화염문의 존재 여부와 형태 변화이다.
현전 최초 『원종예장도감의궤』에서는 화염문이 존재하지 않으며, 이 화염문의 형태는 처음 1659년 『효종대왕영릉천릉산릉도감의궤』에서 적색으로 채색된 단순한 화염문의 초기 형상이 나타난다.
1674년 『인선왕후영릉산릉도감의궤』에서부터 화염문의 형태가 한번 살짝 끝이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형식으로 바뀌며, 적색의 화염문 앞에 황색으로 선(線)처럼 칠해진 모습이 나타난다. 1684년 『명성왕후숭릉산릉도감의궤』에서는 화염문에 6번의 굴곡이 나타나며, 굴곡의 수와 형태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화염문은 지속되다가 1721년 『숙종명릉산릉도감의궤』에서 현전하는 궁중화에서 볼 수 있는 화염문의 형태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화염문만 있을 뿐이며, 다음 『의궤』인 1725년 『경종의릉산릉도감의궤』에서부터 화염문 앞에 선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형태가 계속 유지가 된다.
세 번째 변화는 거북의 배(腹)와 연갑판의 문양에서 나타난다.
1627년 『원종예장도감의궤』에서 1699년 『단종장릉봉릉도감의궤』까지 거북 배(腹)의 문양은 실패 (⧗) 모양으로 배를 양분하는 형태로 나타나며, 연갑판도 빗살 무늬처럼 단순하게 몇 개의 선으로만 나타난다.
점점 배(腹)에 실패 모양의 무늬가 점점 많아지다가, 외규장각 소장의 1699년 『정순왕후사릉봉릉도감의궤』에서는 실패 모양이 없어지고, 연하고 단순한 형태의 검은색 얼룩무늬로 바뀐다.
얼룩무늬의 색도 점차 진해지면서 복잡한 형태로 변화하는데, 이러한 형태는 1699년 『정순왕후사릉봉릉도감의궤』에서 1731년 『장릉천릉시산릉도감의궤』, 1800년 『정조건릉산릉도감의궤』에서 1926년 『순종효황제산릉주감의궤』까지 나타나며, 여러 개의 실패 모양이 사라지고 배(腹)는 세로로 몇 개씩 구분된다.
1757년 『정성왕후홍릉산릉도감의궤』에서 여러 개의 실패 모양으로 구분된 배와 연갑판 사이에 얼룩무늬가 나타나며, 규장각 소장에서는 얼룩무늬가 검정색으로, 외규장각 소장에서는 검붉은 얼룩무늬로 나타난다. 1776년 『영조원릉산릉도감의궤』에서는 배와 연갑판이 모두 검정색으로 채색되어 있고, 그 안에 황색의 타원형이 그려져 있다. 타원형 안에는 검붉은색으로 꽃점이 찍혀져 있다. 1789년 『장헌세자현륭원원소도감의궤』에서는 1776년 『영조산릉도감의궤』와 문양이 비슷하나, 타원형 안에 꽃 점무늬가 흐려지며, 얼룩무늬와 비슷하게 변화한다.
그 밖에 거북의 꼬리 수, 콧등과 입의 채색, 거북 등 가장자리의 마감 처리 등 거북 도상은 조금씩 변화해감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고대에서 ‘거북’은 신령스러운 존재였지만, ‘용’이나 ‘호랑이’처럼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점차 ‘거북’과 ‘뱀’이 합쳐지면서 ‘현무(玄武)’라는 신령스럽고 힘 있는 존재로 변화한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