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 속 '거북 도상'의 변화와
상징 이야기 (5)

거북 도상의 기원과 변화(2)-상, 주, 춘추전국시대, 진(秦)나라

by 연아 아트

중국에서 최초의 국가로 인정받고 있는 나라는 '상(商, 은, B.C. 1600∼B.C. 1046))나라'이다.

보통 '은나라'라고 많이 부르는데, 이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상나라의 마지막 수도가 '은(殷)'으로, 상나라를 멸망시킨 주나라가 '상'나라를 얕잡아보면서 마지막 수도였던 '은'의 명칭을 따서 '은나라'라고 불렀다. 그리고 멸망한 왕조의 마지막 수도였던 '은'은 사람들이 떠나가면서 폐허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고, 은의 이러한 모습을 '은나라의 황폐해진 흔적'이라는 의미를 가진 '은허(殷墟)'라 불리었다.


그러나 1900년대 '은허'에서 갑골문이 발견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상나라'와 '은'이 재조명되기 시작한다. 1899년 금석문 학자 '왕의영'은 그 당시 '용골'이라고 불리던 한약재에 글자 같은 게 새겨져 있음을 발견하고 그것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상나라'와 '은'의 존재가 되살아날 수 있었다.


'은허'는 지금의 중국 허난성 안양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192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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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나라, 은허 지도- 나무 위키 출처>


갑골문 귀갑.png <갑골문 귀갑>


'상나라' 사람들은 무역과 장사를 통해 발전했던 나라였기 때문에, 현대에 와서도 상나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상인(商人)'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상나라 시대 출토물 중에서 거북 문양(龜紋)이 새겨진 청동 그릇(동기)이 여럿 출토되었다.

상나라의 청동 그릇에 나타난 거북의 문양은 '일반 거북'의 모습으로 ‘거북 단독’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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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나라 청동 그릇 거북 문양, 허난성 안양 은허 출토물과 북경 평곡 출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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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나라 청동 그릇 거북 문양, 허난성 정주 백가장 출토>


거북이 어느 시대부터 ‘귀사합체’의 모습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상나라 다음 왕조인 '주나라'에서는 ‘귀사합체’의 모습과 ‘거북 단독형’의 모습이 함께 나타났다.


주나라(B.C. 1027∼B.C. 771) 왕실의 관직 제도를 기록한 『주례』 中 「춘관종백」 <사상(司常)> 조에 아홉 가지 깃발의 형식과 내용이 나오는데, 사방위 신(四神)과 오방색(五方色)의 개념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상(司常)은 9가지 깃발의 물명(物名)을 관장하여, 각각 소속이 있게 하고 국사(國事)에 대기하

게 한다. 일월(日月)로써 상(常)을 삼고, 교룡(交龍)으로 기(旂)를 삼고, 통백(通帛)으로 전(旜)을 삼

고, 잡백(雜帛)으로 물(物)을 삼고, 웅호(熊虎)로써 기(旗)를 삼고, 조준(鳥準)으로 여(旟)를 삼

고, 귀사(龜蛇)조(旐)로 삼고, 전우(全羽)로 수(旞)를 삼고, 석우(析羽)로 정(旌)을 삼는다.’


위에서는 보는 바와 같이, ‘구기(九旗)’에 ‘교룡(蛟龍, 용)’, ‘웅호(熊虎, 곰과 호랑이)’, ‘조준(매)’, ‘귀사(龜蛇)’가 나온다.이것으로 보았을 때, 주대(周代)에도 현재와 같은 ‘사신’의 개념이 완전히 확립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귀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현무’라고 뚜렷이 명명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이미 ‘귀사합체’로써의 ‘현무’의 개념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기(旂) : 날아오르는 용과 내려오는 용을 그린 붉은 기, 제후가 세우는 기

전(旜) : 깃대가 구부정한 붉은 기, 무늬를 그리지 아니한 붉은 비단의 기

기(旗) : 곰과 범을 그린 붉은 기

여(旟) : 붉은 비단에 송골매를 그려 넣은 기

조(旐) : 거북과 뱀을 그린 폭이 넓은 검은 빛깔의 기

수(旞) : 꼭대기에 오색의 새의 깃털을 붙여서 장식한 기, 천자만이 씀

정(旌) : 천자(天子)가 사기를 고무할 때 쓰던 기


또한 같은 책, 「동관고공기(冬官考工記)」 <주인(輈人)> 조는 수레의 모습을 별자리 28수(宿)로 설명하고 있다. 깃발의 내용에 따라 별자리의 상징을 설명하며 ‘귀사’의 개념이 북방칠수(北方七宿)의 하나인 ‘영실(營室, 현무)’을 상징하고 있다고 하였다.


‘주인(輈人)은 수레의 주(輈, 끌채)를 만든다.-중략-진(軫, 수레)의 모난 것은 땅을 본뜬 것이다.

개(蓋, 덮개)의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다. 윤폭(輪輻, 수레 폭)을 30으로 하는 것은, 태양과

달을 본뜬 것이다. 개궁(蓋弓)을 28로 한 것은, 28수(宿)를 본뜬 것이다. 용기(龍旂)가 아홉 깃발인

것은, 대화(大火, 심수, 蒼龍)를 상징한다. 조여(鳥旟)가 일곱 깃발인 것은, 순화(鶉火, 유수, 朱雀)

를 상징한다. 웅기(熊旗)가 여섯 깃발인 것은, 정벌(征伐. 白虎)을 상징한다.

귀사(龜蛇)가 네 깃발인 것은, 영실(營室, 현무)을 상징한다.’


※ 28수(宿) : 사방위를 7개씩 나눈 것으로, 각 구역의 7수는 전체가 해당 방위의 성수를 의미하는 별자리로

구성해 해당 방위의 사방 신이 통솔한다. '28수'의 이름은 『여씨춘추』,『회남자』, 『사기』 등 진한

(秦漢) 시기의 책에 모두 등장한다.

28수별자리001 (2).jpg <'회남자' 「천문훈」에 따른 28수(宿)> '현무'가 '귀사합체'의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주례경도록』의 구기제도(九旗制度)를 보면, ‘귀사합체’의 모습으로 ‘조(旐)’를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거북’의 모습은, '실제 거북의 모습'을 하고 등에는 여러 형태의 '귀갑문'을 가지고 있다.

또한 거북이 앞을 보면서 나아가고, 뱀이 거북을 향해 뒤돌아 마주 보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고대의 '일반적인 현무’의 모습이다.

구기제도001 (2).jpg <주례경도록의 구기제도>
구기제도 중 조001 (2).jpg <구기제도 中 조(旐)>

전국시대 초기인 B.C.433에 만들어진 '증후을묘(曾候乙墓)'의 칠상개(漆箱蓋, 옻칠한 관 덮개) 뚜껑 중앙에 별을 상징하는 ‘두(斗)’ 자를 크게 배치하고, 그 주위에 '28수(宿)' 별자리를 상징하는 글자(漢字)들을 시계방향으로 배열한 것이 발견되었다.

증후을묘칠상개001 (2).jpg <증후을묘 칠상개>
증후을표칠상개2001 (2).jpg <증후을묘 칠상개 모사도>


'증후을묘'에 나타난 도상 중에 28수(宿)와 함께 ‘청룡’과 ‘백호’가 함께 그려져 있어, 하늘의 별자리를 주대(周代)와 마찬가지로 ‘사신’과 연관시키는 방식이 결합하여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28수의 중앙 부분에 ‘북두칠성’이 자리하여 천구상의 방향 표시를 두율법(斗律法)을 따랐음을 알 수 있다.


'증후을묘(曾候乙墓)'는 '증나라 제후 을이라는 사람의 묘'라는 의미이다.


앙소문화의 서수파유지45호한묘(西水坡遺址45號漢墓)와 '증후을묘' 칠상개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용’과 ‘호랑이’만 있을 뿐, ‘사신’을 구성하는 ‘주작(朱雀)’과 ‘현무’의 모습이 확인되지 않는다.


이보다 앞선 주(周)나라 시기의 ‘구기제도’를 통해 ‘귀사’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신’의 개념이 전국시대 초기까지 정립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주작’과 ‘현무’의 도상이 ‘사신’으로 자리 잡기 전까지는 ‘용호(龍虎) 사상’이 오랜 시간 유지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전국시대 후기 초(楚)나라 '굴원(屈原)'이 지은 『초사(楚辭)』「원유」편을 보면, 전국시대 후기에는 사방위와 북방의 신이 ‘현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고삐를 잡고 채찍을 바로 하며, 구망(句芒)을 지나가네. 동쪽태호(太皓)를 지나, 오른쪽으

로 도니, 앞에서 비렴이 길을 여네.-중략- 봉황의 날개는 운기(雲旗)에 닿아 있고, 서황(西皇)에서

수(蓐收)를 만나네. 혜성을 따서 깃발로 삼고, 북두칠성을 들어 지휘하는 깃발로 삼네-중략- 날은 벌

써 어두워지고 사방은 몽롱하니, 현무(玄武)를 불러 바짝 따라오게 하네.(밑줄은 필자)


※ 굴원(屈原, B.C.343-B.C.278) : 전국시대 초나라의 정치가이자 시인으로, 초나라에서 형성, 발전한 시

가 총집인 '초사'의 대표적인 작가로 초나라 특유의 색채를 담은 낭만적인 시풍을 확립시켰다.

후에 초나라가 멸망하고 '멱라수' 강에 투신하며, 생을 마감한다.

호암미술관 소장 <윤리문자도> 중 '충(忠)'자에 굴원과 관련된 고사가 그려져 있다.


『예기』 「월령」편을 보면, '초사' 「원유」편에서 등장하는 ‘구망(句芒)’과 ‘태호(太皓)’는 동방과 관련된 신(神)이고, ‘욕수(蓐收)’는 서방과 관련된 신(神)이며, ‘현무’는 북방과 관련된 동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기 월령001 (2).jpg <'예기' 「월령」 편에 따른 방위와 오색 구분>

같은 책 「곡례」편은 군진(軍陣)과 군이 행진할 때의 절차 등을 설명하는 부분으로, ‘군의 행진에 앞에는 주조기(朱鳥旗), 뒤에는 현무기(玄武旗), 왼편에는 청룡기(靑龍旗), 오른편에는 백호기(白虎旗)를 세운다.’라는 기록이 있어, 이 시기에는 이미 ‘사신’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백호통의』에서는 ‘북방의 정기(精氣)는 현무로서, 물의 세계에서 움직임을 감추며 (갑충류인) 거북·뱀·말조개·바지락을 거느린다.’고 하여 ‘현무’가 북방의 정기이며, 개충류의 우두머리임을 밝히고 있다.


※ 백호통의(白虎通義) : 후한의 '반고(班固, 32-92)'가 장제(章帝)의 칙명에 의해 편찬한 책이다.


또한 『예기』「예운」편에는 ‘기린’, ‘봉황’, ‘거북(龜)’, ‘용’을 ‘사령(四靈)’이라고 칭하였고, ‘현무’라는 용어 대신 ‘거북(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책, 「곡례」편에서는 ‘거북’ 대신 ‘현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 개념에 다소 혼동을 초래하기는 하지만, 「곡례」편이 군진(軍陣)과 군(軍)이 행진할 때의 절차 등을 설명하고 있는 것임을 감안해 본다면, 군(軍)의 사기 면에서 '일반 거북'보다는 ‘몸에 비늘과 두꺼운 껍질이 있는 현무’ 즉, 비늘과 두꺼운 껍질(갑옷)로 중무장하고 있는 ‘현무’가 군의 위엄과 사기를 올리는데 더 합당하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이것으로 ‘현무의 원형’이 ‘거북(龜)’에서 기인하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사령’에 ‘백호’ 대신 ‘기린’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았을 때, 이 시기까지도 ‘사령’과 ‘사신’의 개념이 동일한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 예기 : 중국 유가 5경 중의 하나로 예법의 이론과 실제를 풀이한 책이다.

원문은 공자(B.C.551-B.C.479)가 편찬했다고 전해진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이후 흩어져 전해오다가

한나라 때 흩어진 저작들을 모아 정리하였다. '예기'에는 그 주제인 곡례·단궁·왕제·월령·예운·학기·악기·

대학·중용 등을 다룸에 있어서 도덕적인 면을 매우 중요하게 보았다.


진(秦)나라 때 편찬 된 『여씨춘추(呂氏春秋)』「십이기(十二紀)」편에서도 『예기』「월령」편과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데, 내용 면에서도 거의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여기서는 사신이 푸른 용, 흰 말, 붉은 말, 검은 말이라고 하였다.

사수문와당(진나라) (2).jfif <진(秦), 사수문 와당>


『예기』와 『여씨춘추』에서도 ‘사신’에 대한 개념이 여전히 명확하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주대(周帶)에 생겨난 오방위(五方位)에 따른 ‘오색(五色)’의 관념이 지속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오방색이 부여된 ‘오수(五獸)’에 대한 관념은 ‘사신의 체계’로 가는 일련의 과정으로 추측된다.


※ 여씨춘추(呂氏春秋) : 진(秦)의 재상 여불위(呂不韋, ?-B.C. 235)가 선진시대의 여러 학설과 사실, 설화

를 모아 편찬한 책으로 일종의 백과전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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