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 도상의 기원과 변화 (1)- 앙소문화(신석기), 하나라
예로부터 청룡, 백호(또는 기린), 주작, 현무를 사신(四神), 사령(四靈), 사수(四獸)라고 불렀다.
사신은 동서남북 네 방위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방위를 나타내는 색깔과 방위를 지키는 신수(神獸)로 구성되어 있다.
동쪽은 청룡(푸른 용), 서쪽은 흰 호랑이(백호), 남쪽은 붉은 봉황(주작), 북쪽은 거북과 뱀이 합쳐진 모습(현무)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왜 북쪽은 거북과 뱀이 합쳐진 모습이라고 해도 비중은 뱀보다는 거북 쪽에 훨씬 큰 비중을 두었음에도 현귀(玄龜)가 아니라 현무(玄武)라고 불렀을까?
그 이유는 송나라 홍홍주가 쓴 '초사(楚辭)' 보주(補註)에 잘 나타나 있다.
‘현무(玄武)'는 귀사(龜蛇, 거북과 뱀이 합쳐진 모습)라고도 한다. 북방에 위치하고 있어 (검을)현(玄, 북방의 상징색)이라 하고, 몸에 비늘과 두꺼운 껍질이 있으므로, (무기) 무(武)라고 한다.’라고 했다.
'현무'는 북방을 의미하는 '검을 현'자와 거북 몸을 둘러싸고 있는 비늘과 두꺼운 껍질로 인해 그 딱딱함을 곧 견고함으로 느껴졌고 이것은 적에게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는 무기(武)로 보아 '무기 무'자를 썼던 것이다.
여기서 ‘현무’는 일반 거북의 ‘거북 단독’으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거북과 뱀이 한몸을 이루고 있는 ‘귀사합체’의 모습으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 사신은 언제 처음 나타났으며, 처음부터 완전체로 나타났을까?
결론적으로 중국의 신석기 시대 무덤에서 처음 '용호(龍虎)'의 형상과 북두칠성의 별자리를 형상화하여 나타난 것에서부터 '사신의 시작'으로 보며, 처음부터 완전체로서 짝을 이루며 유물이나 유적에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사신’의 일부가 등장하는 가장 빠른 사례는, 중국 하남성 복양 서수파유지45호한묘(西水坡遺址45號漢墓)에서 확인된 ‘용’과 ‘호랑이’의 형상이다.
위의 그림은 약 6천년 전 신석기시대 앙소문화(仰訴文化)의 무덤으로, 인골(人骨)의 양옆에 조개껍데기로 만든 ‘용’의 형상은 동쪽, ‘호랑이’의 형상은 서쪽에 배치되어 있고, 발밑에는 인골과 조개껍데기로 만든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상징하는 듯한 뼈조각 무지가 발견되었다.
이것은 현재까지 발견된 ‘용호’의 상징으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중국 최고(最古)의 천문도(天文圖)로 보고 있다.
하(夏)나라는 중국에서 수백년간 존재했다고 전해지는 나라로, 현재 유적이 발굴되지 않아 역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하도낙서(河圖洛書)'의 전설이 있다.
'하도(河圖)'는 '황하에서 나온 그림'으로 용마(龍馬)의 등에 새겨진 55개의 점으로, '복희(伏羲)'가 이것을 보고 '팔괘'를 만들었다고 한다.
'낙서(洛書)'는 '낙수에서 나온 글'로 '하우(하나라 우임금)'가 낙수에서 홍수를 다스릴 때, '낙수'에서 나온 신령스러운 거북의 등에 새겨진 45개의 점으로, 하우가 이것을 보고 천하를 다스리는 대법인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민화 문자도 중 <유교문자도> '예(禮)'자에 '거북'이 그려지는 이유이다.
※ '홍범구주(洪範九疇) : 홍범은 대법(大法)을 말하고, 구주는 9개 조(條)를 말하는 것으로, 즉 9개 조항의
큰 법이라는 뜻이다.
'대우(大禹)=하우(夏禹)=우 임금=우' 라고 불리며, 우 임금이 홍수를 다스리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