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 속 '거북 도상'의 변화와 상징 이야기 (2)

선사시대 암각화 '거북'

by 연아 아트

우리나라에서 처음 거북 도상이 나타난 것은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소재)이며,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암각화 유적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약 300여 점의 그림들이 새겨져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처음 '거북' 도상이 나타난 곳이기도 하다.

이 암각화에는 고래를 사냥하는 모습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으며, 약 7,000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암각화에서 메인 테마는 고래잡이지만, 고래 떼 앞에 세 마리의 거북이가 고래 떼를 인도하는 듯한 장면으로 표현되어 있어 당시의 사회에서 거북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혀 낮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거북이 우리 민족의 토템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반구대 암각화001 (3).jpg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박물관 팸플릿>

사람들이 특정 동물이나 식물, 또는 어떤 자연물을 신성시할 때, 그 신성시되는 대상을 '토템'이라 한다.

이 토템은 당시 씨족 집단과 모종의 관계로 맺어져 있다.

예를 들면, 씨족 집단이 사는 지역에 어떤 동물이 많이 살고 있다면, 그 동물은 그 씨족 집단의 토템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왜냐하면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 토템이 되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씨족 집단은 그 토템이 되는 동물을 존경하고 신성하였고 또한 그 동물과의 관계를 지속하고 개선하기 위해 제의적 행동을 취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 동물은 씨족을 상징하는 표상으로 삼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점으로 보았을 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서 '거북' 토템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을 거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서 나타난 거북이 당시 우리 민족의 토템의 대상이었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당시 고대인들에게는 거북은 친숙한 존재였음은 분명하다


선사시대 암각화에서부터 나타났던 '거북' 도상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도상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조선시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암각화에서 거북은 단순한 일반 거북의 모습이었지만, 삼국시대 고분벽화 속의 거북은 ‘사신’의 하나로서, ‘현무(玄武)’의 모습으로 죽은 자의 무덤을 지키는 신령스러운 동물이었다.

고분 속의 현무는 뱀과 서로 얽혀 있는 ‘귀사합체(龜蛇合體)’의 모습으로 나타났고, 두상에 귀가 달린 뱀의 머리를 가진 ‘사두형(蛇頭形)’ 혹은 ‘길짐승’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벽화고분은 한동안 조성되지 않다가 고려 왕조가 들어서면서 석실 벽화분(壁畫墳)의 전통이 되살아났다. 불교를 숭상하던 고려에서는 주로 화장(火葬)하여, 큰 분묘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왕실을 비롯하여 귀족층에서는 고구려 때와 마찬가지로 큰 석실묘를 조성하고 그 안을 벽화로 장식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예(例)가 태조 왕건의 ‘현릉(玄陵)’과 ‘공민왕릉(玄正陵)’이다.

고려시대 회화 속의 ‘사신’의 모습은 동경(銅鏡)과 금속 장신구로 대표되는데, 고구려 고분벽화의 ‘현무’의 모습이 아닌, 용의 머리를 지닌 ‘용두형(龍頭形) 현무’로 나타났다.


조선시대 거북 도상은 먼저 왕실의 '흉례에 관한 의궤'에서 등장하였으며,

<십장생도>와 <신선도>, <화조도>, <어해도>에서는 장수 등을 기원하는 ‘길상화’로, 그리고 <문자도>에서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예(禮)’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궁중 회화와 민화에서 등장하였다.


이렇듯 조선시대 '민화'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무병장수의 소망, 소원 성취, 출세, 부귀영화와 같은 염원을 가장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그림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화'는 대중문화의 의의라는 차원에서 한국적인 예술정신의 정체성을 말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민화'에는 많은 '거북 도상'들이 등장한다.

선사시대부터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우리의 의식 속에 친근하게 나타나는 거북이지만, 실제로 거북 도상에 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어 있지 않아 현재까지는 거북 도상에 대한 의미와 시대적 변화를 구체적으로 접근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필자는 조선 후기 민화에 나타난 ‘거북’ 도상을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거북에 대한 의미를 실증적이고, 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해보고자 한다.


민화 속에 등장하는 거북은 단순히 즐기기 위해 그려진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의미부여’를 가지고 그려진 것이었다.

고대인들의 수명은 짧았다.

조선시대 왕들의 평균 수명이 47.3세였다고 하며, 일반 백성들은 35세 내외 혹은 그 이하였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수명그래프001 (2).jpg <한국인의 평균 수명>

이것은 비단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그 앞의 시대에도 조선시대의 평균 수명보다도 더 높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문제는 일반 백성, 즉 남성보다는 여성과 영유아가 더 심각하였다.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영양상태가 더 나빴고, 더욱이 ‘조혼(早婚)’ 풍습으로 인하여 모체가 완전히 성숙되기도 전에, 당시 미덕으로 요구되었던 ‘다산’과 ‘다남’의 의무를 이행했어야 했다

이러한 이유로 여성들은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모체(母體)로부터 제대로 된 영양 공급을 받지 못했던 영유아의 사망률 역시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이러한 사회적인 어려움 속에서 고대인들은은 어떤 소망을 품었을까?


아마도 어렵게 살아남은 아이가 ‘예’를 갖춘 사람으로 튼튼하게 자라나서, 결혼을 하고 많은 자손을 두고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며 살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리고 출산을 무사히 마친 부부는 해로하며, 함께 무병장수하기를 바랬을 것이다.


고대인들의 이러한 소망은 ‘무병장수’, ‘다산’, ‘재복’의 상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거북’을

그림 속에 그려 넣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십장생도>, <신선도>, <화조도>, <어해도>, <문자도>와 같은 그림에 ‘거북’을 그려 넣음으로써 이러한 염원을 담아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이러한 소망을 담은 거북 도상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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