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다.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 내면서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눈풀꽃은 가장 이른 봄 땅속 구근에서 피어 올라오는 작고 흰 꽃. 설강화( 혹은 영어로는 같은 의미의 스노우드롭(Snowdrop)이라 불린다. 눈 내린 땅에서 꽃을 피우는 특성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
다시 깨어날 줄 몰랐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이미 생명이 있음을 알고 있는 건 아닐까.
절망 속에서, 몸이 반응을 잃었고
다시 일어설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매우 공감이 된다.
비슷한 자리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아무 의지도 없이,
그저 무기력하게 눌려 있던 시간.
하지만 시는 말한다.
아주 작게 반응했고,
그게 시작이었다고.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금 어떤가.
움직일 준비가 되었는가,
아니면 여전히 반응을 미루고 있는가.
두렵지만 다시 시작할 결심을 보여주는 시다.
짧고 강하게 전해지는 시의 함축적인 의미는,
그때그때 들리는 노랫가사가
내 상황을 알아주는 것처럼
읽을 때마다 다르게 느껴진다.
인간은 참 간사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