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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체 Aug 07. 2022

달리기, 나의 삶 나의 놀이

 - 모두 끝이 있다

 엄마를 멀리 보내고 돌아온 일주일이다. 간단한 순간에 눈물이 간단하게 흘렀다. 코로나에 걸렸다. 다 걸릴 때 잘 피하더니 가장 피해야 할  쉼의 시간에 걸렸다. 백신 접종 때보다 심한 건 별로 없다. 인후통만 더해졌다. 사나흘 견디니 많이 좋았다. 집에만 머무르는 것도 힘들었다. 되는대로 잠시 걷고 뛰자고  탄천을 다녀왔다.

스트라바는 나를 기억하고 있다

 늘 그렇듯이 살면 살아지듯 달리면 달려진다. 스스로 무리하지 않기로 하고 러닝화를 신었다. 땀이 흐르고 숨이 차오르고 다리가 무거워지는 일이 얼마나 고마운가. 이토록 살아 달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간곡한 고마움인가. 짧은 거리를 되도록이면 천천히 느리게 달렸다.


 한 구절 한 구절 머리에 떠오는 말들을 마셨다 뱉었다 또 마셨다 뱉었다. 하나님 하나님 감사합니다. 엄마가 가셨어요. 떠났어요. 하나님이 아시지요? 하나님이 더 잘하실 거죠? 살아남은 자식들의  슬픔이 보이시죠? 살펴주세요. 돌봐주세요. 언제든 일없이 좋은 일 할게요. 더 잘 살아갈게요. 저희들을 돌봐주세요.


 맥락도 계통도 없다. 달리는 순간에 다가오는 언어들과 단어들과 문장들. 그러다 문득 잡히는 한 단어, 한 문장이 모든 호흡과 모든 무릎을 장악한다. 오늘 한 시간 안팎인 달리기에 이 말과 생각이 '뚝'하고 내려왔다. 쉰 하나 그리고 여든여덟. 모두 끝이 있다. 아빠의 쉰 하나,  엄마의 여든여덟. 아빠의 끝,  엄마의 끝.

  스물셋의 내게로부터 쉰 하나의 아빠가 떠나셨다. 이별의 아픔 이별의 시간 이별의 언어도 없었다. 그날 이후 오랫동안 '쉰 하나'는 내게 하나의 무거운 신호와 싸인이었다. 쉰한 살을 건너는 날까지 무의식과 무감각 속에 나는 늘 두려워했다. 쉰 한살이 오기는 오는 걸까? 그때까지만 살아도 잘 사는 건가? 문득 나이가 몇인가 하며 숫자로 다가오는 때가 있다. 긴장이 되었다. 조심도 염려도 오래 얹혀 있다가 막연한 죽음이 '실감'으로 다가왔다.


 돌아보니 어느 날 '쉰 하나'를 넘긴 내가 거기 서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막내도 그 나이를 곧 타고 넘을 게다. 막연한 어렴풋한 애매한 궤적 속에 한 점으로 볼록 올라와 서 있던 51. 이제 한 점이 더해졌다. 서른 해가 남아 헤아린다. 여든여덟 88. 엄마의 여든여덟 나의 쉰여덟. 남은 수를 헤아리고 끝을 가늠하는 상쾌하고 섬뜩한 날들이 시작된다. 엄마는 언제나 기본은 백 세요, 더 하면 십여 년도 보태질 거라 믿었다. 끝이 느닷없이 훙덩  들어와 버렸다, 보란 듯이, 예측이 얼마나 허망하냐는 듯.


 달리다 보면 감정의 속살이 오롯이 보인다. 달리기의 매력이다. 알 수 없는 애매하고 불투명한 안갯속에 서서히 환히 드러나는 감정들. 만지고 더듬고 셀 수도 있는 감정들이 보인다.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뿐이다. 달리고 달리고 달리다 보면 그 뭇 감정들 내게 다 보여주고 할 말 다 하고  본래의 자리로 사라진다.


 51과 88. 스물셋과 쉰여덟. 서른 다섯 해가 벌어져 있었다. 자식들도 나이를 헤아릴 만큼 먹고 들고 서 있다. 아빠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들이 이젠 속을 후비진 않는다. 언젠가 엄마도 그 아련하고 고운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 밥을 먹다가 길을 걷다가 달리다가 TV를 보다가 다가온 엄마와 눈물들 대신.


 새로운 끝, 여든여덟에 대한 '문득'자각이 고맙다. 느티나무 이삼십 미터 족히 큰 나무에 길고 높고 우뚝한 자리 다 놔두고 밑동 가리 낮고 어둔 자리에 잎줄기 뻗었다. 무에 상관이랴 하면서 잎은 자라고 줄기는 굵어진다. 살아가면 살아진다는 듯 잎은 뜬금없는 한낮의 한 조각의 볕이라  더 고마워 빛난다. 잘 살아가다  보면 끝이 보이고 끝에 이르러 쉰 하나의 아빠 여든여덟의 엄마를 보면 될 일이다. 오늘도 볕은 깻잎 상추 고추 호박잎과 고무나무 벤자민 그리고 나의 작은 등에 골고루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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