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혹(當惑)은 '어찌할 바를 몰라 어리둥절함'. 잠시 어리둥절할 때도, 오래오래 어리둥절할 때도 있었다. 바람이 불어 다행인 광복절이다.
커피를 사러 컴포우즈커피 문을 열다 멈춰 서서 한참을 쳐다본다. 어찌해야 하는가. 손바닥보다 큰 사마귀 한 마리 문 앞 나무데크에서 무엇을 하는가. 밟힐 텐데 문 앞에서 무엇을 하는가. 아니, 내가 어찌해야 할까 생각하다 주변을 살핀다. 정육점 박스 안에 든 비닐을 꺼내 사마귀를 감싸 길 가 풀숲에 내려놓았다. 잘 살아야 할 텐데 돌아보다 커피집으로 향한다.
이 낯선 도회지에는 어찌 오셨는지요?
휴일인데 무얼 하시냐고 문득 핸드폰을 본다. 그렇구나, 엄마가 없다. 4번을 꾸욱 누르려다 말고 멈칫 선다. 엄마가 없다. 단축번호 1번은 집, 2번은 가게, 3번은 아내, 4번은 엄마, 5번은 사무실, 6번은 아들, 7번은 딸. 아무 생각 없이 핸드폰의 다이얼을 보다 멈춰 숨을 쉰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신 후 걸어주십시오. 엄마는 없고 바람은 불고 문득 4번을 꾸욱 눌렀다 다시 얼른 귀를 대본다. 혹시나 혹시나 귀를 대본다. 귀로도 눈물이 나온다. 한없이 똑 부러진 적확하고 단정한 예의 그 목소리에 귀가 닫힌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신 후 걸어주십시오.
삼 년 전 미아리 사랑하는 형의 죽음 앞에 쓴 시 하나를 다시 찬찬히 읽는 815 광복절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