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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체 Aug 15. 2022

당혹 : 어찌할 바를 몰라도 되는 순간

          - 당혹(當惑) :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당혹(當惑)은 '어찌할 바를 몰라 어리둥절함'. 잠시 어리둥절할 때도, 오래오래 어리둥절할 때도 있었다. 바람이 불어 다행인 광복절이다.


 커피를 사러 컴포우즈커피 문을 열다 멈춰 서서 한참을 쳐다본다. 어찌해야 하는가. 손바닥보다 큰 사마귀 한 마리 문 앞 나무데크에서 무엇을 하는가. 밟힐 텐데 문 앞에서 무엇을 하는가. 아니, 내가 어찌해야 할까 생각하다 주변을 살핀다. 정육점 박스 안에 든 비닐을 꺼내 사마귀를 감싸 길 가 풀숲에 내려놓았다. 잘 살아야 할 텐데 돌아보다 커피집으로 향한다.

이 낯선 도회지에는 어찌 오셨는지요?


 휴일인데 무얼 하시냐고 문득 핸드폰을 본다. 그렇구나, 엄마가 없다. 4번을 꾸욱 누르려다 말고 멈칫 선다. 엄마가 없다. 단축번호 1번은 집, 2번은 가게, 3번은 아내, 4번은 엄마, 5번은 사무실, 6번은 아들, 7번은 딸. 아무 생각 없이 핸드폰의 다이얼을 보다 멈춰 숨을 쉰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신 후 걸어주십시오. 엄마는 없고 바람은 불고 문득 4번을 꾸욱 눌렀다 다시 얼른 귀를 대본다. 혹시나 혹시나 귀를 대본다. 귀로도 눈물이 나온다. 한없이 똑 부러진 적확하고 단정한 예의 그 목소리에 귀가 닫힌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신 후 걸어주십시오.


 삼 년 전 미아리 사랑하는 형의 죽음 앞에 쓴 시 하나를 다시 찬찬히 읽는 815 광복절 오후다.



 가을이 왔는데

 

                                (2019년 9월 1일)

  

먼 남녘 보성에서 갓 올라온

미아리 길음2동 표영택 씨 댁

문간방 살던 열여섯 중3짜리

보름달 빵과 딸기우유 먹던 그때

작은 돌산 정인교회 학생회장 문호형이

서라벌고등학교 2학년 문호형이

서너 번 찾아와 기어이 날 교회에 데리고 간

문호형이 몇 달 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이제야 들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십시오


혹 누군가 받을까 형수나 딸이나 받을까

걸어본 형의 전화는 없는 번호가 되었다 

사람이 없는데 번호는 있어서

없는 번호라고 말이라도 하는구나


미아리 형님 아우들 만날 때마다

형의 안부를 묻고 아픔을 염려하고

받지 않는 전화를 돌리고

생각날 때 기도하던 염치없는 일도

이젠 할 수가 없다


가을이 왔는데

더불어 가을장마도, 먼 곳에서 올라오는

태풍 링링의 소식도 들려오는데

죽은 형은 전화도 받지 않고

홀로 동동 어디로 간 것일까

따뜻하고 다정하고 곱창에 소주 한 잔

길음시장 포장마차 밤 새 좋았던 형에게

어찌 안부를 전할까

몰라, 몰라 그냥 보고 싶다고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고

없는 번호에게 전화를 한다

몰라, 몰라 형 그냥 잘 지내라고

또 전화하겠다고 그러겠다고

눈물도 밥이 될까 울고 또 운다

잘 지내 형.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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