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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체 Aug 23. 2022

88 88 234  직사각형

겪어야 아는 것들

  엄마의 죽음 후에야 '실질(實質)'로  다가온 것들이 있습니다.

 

죽음의 소식에 나이를 확인합니다.

 오늘 아침 뉴스에 대웅제약 '우루사'를 키워낸 창업주 윤모 회장의 별세 소식이 올라왔습니다. 눈이 먼저 확인한 것은 '향년 88세'였습니다. 아, 88세. 엄마랑 비슷하게 가셨네, 했습니다. 안도의 마음이 듭니다. 부러움을 일으키는 '향년 95세'도 있습니다. 걷다 뵙는 어른들의 표정과 몸짓을 보며 나이를 가늠합니다. 부러움과 안도가 교차합니다.


 오래전 신춘문예 응모하던 그때, 신년 당선작 읽으며 확인하던 것이 나이였습니다. 새로 시집을 살 때도 확인하곤 했습니다. 아직 나에게도 가능성이 있네, 아,  저리 젊은 친구가 벌써 등단을 하는구나, 했지요. 어느 순간 가벼이 지나가는 '그들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엄마를 기억하는 그 '나이'도 언젠가는 묽어지겠지요.


ㆍ엄마 얘기가 실질(實質)로 다가옵니다.

  후회하지 않도록 자주 전화하고 찾아뵙도록 . 가끔 누군가 돌아가신 엄마를 회한 속에 떠올리며 건네던 말들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엄마는 정정하셔서 아직 멀었다고, 난 그런대로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했지요. 허투루 들었지요. 돌아가신 날 이후 후회와 아쉬움 오지 않은 날이 없지요. 그리움과 별개로 아쉬움은 서러움을 데리고 함께 옵니다.


 누가 엄마 얘기를 한다면, 온통 전하고 싶어요. '그대의 엄마는 생각보다 금세 떠날 수 있어요.' '그대 엄마의 건강을 믿지 마세요. '그대의 건강도 믿지 마시구요.'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온 맘 다해 상상했더라면. 엄마가 얼마큼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안고 싶고 듣고 싶은지 '실질'로 상상했더라면.

그날 밤 응급실에서의 엄마의 손. 저 먼 그리움이어.

 아, 이토록 수척한 손

 아, 이토록 그리운 손

 멕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고 키우던

 만지고 주무르고픈 엄마의 손.

 이제는 그토록 멀리 저 너머에 있는 손.

 실질(實質)절망은 얼마나 깊고 무거운가.


ㆍ88 88 234 그리고 직사각형

 한동안 누구나 알고 쓰던 '아재들'의 말이었지요. 99 88 234. 99세까지 88 하게 살다가 이삼일 아프고 죽자. 엄마는 88 88 234. 정확하고 아쉽고  절묘하게 88세까지 88 하게 사시다가 이삼일 응급실과 중환자실 계시다 돌아가셨습니다. 누구의 손발 빌리지 않고 '손수' 사라지셨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는 작가의 마지막 붓놀림처럼.


 스콧 니어링 자서전 말미에 선생의 죽음이 그려져 있습니다. 100세 되던 해, 그해 생일 전후 몸의 기력이 다되어 감을 아시고 '손수' 곡기를 끊고 이삼일만에 돌아가십니다. 생과 마무리가 '직사각형'의 모양을 닮았습니다. 이상적인 생의 그래프는 직사각형 모양이라 합니다. 길고 오래 바닥을 향해 아래로 조금씩 흘러내리는 아픈 경사로의 선이 아닙니다. 씩씩한 모양 그대로 거닐다 한 번에 '훅' 꺾이는 직사각의 놀랍고 아름다운 절벽입니다.


ㆍ기도를 합니다.

 엄마의 평생의 기도처럼 '제게도 88 88 234의 축복을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합니다. 감정과 추상이 아닌, 생활(生活)이 정갈하고 소박하기를 기도합니다. 잔잔하고 간절하게 기도를 합니다.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울다 터져 나온, 말이 아닌 악착같은 기도를 합니다.


그대의 반려식물 벤자민이 잘 자라고

그대의 반려동물 해리가 잘 놀고

그대의 목숨과 꿈들이 따뜻하고 아름답기를.

오늘도 그대여, 살아있기 위하여 쓰고 달리고 기도합니다. 나를 용서하소서.


달리기 훈련하는 남한산성 계단의 내리막이 마치 절벽처럼 다정하네요.

*커버 사진은 엄마와의 마지막 밤을 보낸 응급실 주차장의 위치를 식별하려고 찍었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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