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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Mar 28. 2017

그해 5월 왕잠자리

광주 전일빌딩에 남은 흔적

그해 5월 왕잠자리


고작 열두 살이었어

왕잠자리 잡아

노을 질 즈음에

모기장에 집어넣고 놀던 그때는

여름방학만 기다렸지


대갈통에 눈만 보이던 녀석은

여간내기가 아니었어

겹눈 하나에 몇 만인가 하는 낱눈이 있어서

뭐 하나 놓치는 법이 없었지

활주로를 달리지 않고 바로 날개를 펴

두두두~ 날아오르고

사방이 제 것인 냥 둘러본다고

공중에 멈출 때면 위세가 대단했어

금방 튀어나올 것 같은 눈알에서 불꽃이 튀었는데

레이저도 그만큼 불꽃을 뿜지 못해

옆으로 한 쪽 날개를 내리고 방향을 틀 때면

바람 소리마저 달랐어

다다다~ 다다다~


덤프트럭 같은 대갈통에 달린 턱이며

갈퀴 같은 다리를 봐

먹이를 놓치는 법이 없지

정글의 왕 사자보다

바다의 포식자 상어보다

날렵한 냉혈동물이라고


고작 열두 살

여름방학만 기다리던 그해 5월엔

왕잠자리를 모기장에 가둘 수 없었어

방학은 아직 일렀고

송정리 기지촌 너머

스러지던 햇살을 받고 떠오른 왕잠자리는

노을을 붉게 찢고

광장을 물들였어


그건 더 이상 아이가 잡을 수 있는 잠자리가 아니었어

사냥꾼, 뭐 하나 놓치는 법이 없는 사냥꾼이었지

인정머리라곤 찾을 수 없는 냉혈동물

포식자였다고


그해 여름은 너무 빨리 왔어

붉게 말이야


-4연 5.6.7행은 정태춘의 5.18 노랫말 일부를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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