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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Jun 17. 2018

슈퍼우먼도 건망증은 어쩌지 못한다

지연씨가 깜빡깜빡 하는 이유

참 야무지게도 정리하고 담았다 싶었다. 텃밭에서 키운 상추와 부추 등을 차곡차곡 포개어 지퍼 백에 가져 온 사람은 베트남에서 수학 선생님이었던 지연씨 엄마다. 손자손녀들 돌보려고 한국에 왔던 짧은 기간 동안에도 한국어수업에 빠지는 법이 없던 학생이었다. 이번 주에 귀국한다며 울컥해하는 모습에 덩달아 울컥해졌다. 매번 수업 때마다 손수 키운 푸성귀를 들고 와서 쉼터 식구들과 선생님들에게 나눠주면서도 쑥스러워하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아쉬운 인사를 하고 헤어지고 한참 후에 내 책상 모퉁이에 낯선 핸드폰이 있음을 알았다. 지연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헐레벌떡 사무실로 들어오는 모녀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활짝 밝아질 줄 알았던 지연씨는 또 다른 뭔가를 찾는 듯한 눈치였다. 자동차 키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혹시나 채소를 넣을 때 지퍼 백에 함께 넣었나 싶어 살펴봤지만 없었다. 가방 속에 넣지 않았냐고 묻자, 지연씨는 자신하듯 아니라고 답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찾아보라 하자, 마지못해 살피던 지연씨 표정이 밝아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스스로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오늘 지연씨는 몸도 마음도 바쁘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친정어머니 귀국 준비도 도와 드려야 하고, 아침에 갑자기 쓰러진 시아버지 때문에 병원에도 가 봐야 한다. 집에서는 벌써 몇 해째 누워있는 남편과 아직은 엄마 손길이 필요한 애들까지 살펴야 한다.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다. 깜빡깜빡 할 수밖에 없는 주위 환경에도 꿋꿋한 걸 보면 슈퍼우먼이요, 옛 사람들 말로는 효부다.


그런 슈퍼우먼도 건망증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건망증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위로해 보지만, 지연씨 형편까지 달리 위로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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