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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Apr 01. 2019

라면이라도 몇 개 가져갔으면 하는 마음

회사가 산골짜기 아래 있더라 말입니다

새로운 일터를 찾아 떠나는 중국동포 C는 들떠 있었습니다. 한 달 넘게 일자리를 찾지 못해 노심초사하고 있던 탓에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 주목했습니다. 


"회사가 산골짜기 아래 있더라 말입니다."


골짜기 정도는 아니더라도 교통이 편치 않은 시골구석임은 틀림없었습니다. C가 일을 시작하기로 한 첫 날 아침, 함께 공장을 가 봤습니다. 바람 찬 새벽인데도 속이 울렁거릴 정도의 역한 가축 분뇨 냄새가 마을을 휘감고 있는 동네를 지나자 공장 간판이 비포장 도로 너머로 보였습니다. 장을 보기 위해 외출이라도 하려면 택시를 불러야 하는 외진 곳이었습니다. 기숙사라고 하는 곳은 녹슨 컨테이너였고, 2층 구조였습니다. 공장에서 생산한 파이프 보온재들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쌓여 있었습니다.


쉼터를 나와 공장에 가기 며칠 전, C가 들뜬 가운데도 불안해하며 부탁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릇 몇 개와 전기밥통 가져가도 될까요?”


조심스럽게 C가 물었을 때 참 난감했습니다, 그는 담요 같은 침구류를 그냥 가져가는 사람에 비하면 염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쉼터 형편이 어떤지 잘 알고 있고, 그릇을 임의로 가져가면 다른 쉼터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게 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C가 그릇 몇 개와 전기밥통을 가져가도 되는지 물은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쉼터를 처음 열 때, 폐업하는 식당 주방의 모든 그릇을 인수했었습니다. 그 동안 그 많던 그릇이 깨지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기숙사라고 해서 숙소를 제공받지만, 식사를 직접 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사측에서 식기 등을 제공하지 않으면 직접 장만해야 합니다. C는 면접을 보러 왔을 때, 기숙사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살펴보았던 것입니다. 경험상으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일을 시작하면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해야 하고, 시장에 가려면 택시를 타고 나와야 하는 회사에서 주말 전에 시장에 나갈 시간이 없을 거라는 예상이 가능했습니다.


미래가 불확실하면 인생은 구차해질 수 있습니다. 형편이 그런 줄 모르고 ‘죄송하다’고 했었는데, 별 수 없음을 확인받은 C는 “라면은 몇 개 갖고 가도 되지요?”라고 물었었습니다. 그릇에 1인용 밥솥과 반찬까지 마련해 주고 싶지만, 라면 한 상자 밖에 허락할 수밖에 없는 마음 역시 구차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른 새벽 쉼터에서 직장으로 거처를 옮기는 C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조비산으로 자꾸 눈길이 갔습니다. 해발 수 천 미터를 자랑하는 산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그저 그런 언덕쯤으로 치부될 수 있는 낮은 산인데도 사람 마음을 끄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뜬금없게도 김남주의 시 '사랑은', 가운데 소절이 떠올랐습니다.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아는 심성으로 조비산 아래에서 고생할 C를 두고 오는 마음이 편치는 않았습니다. 언제 한 번 꼭 올라보고 싶은 조비산이 지척이었는데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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