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설악 그란폰도

설악의 하늘은 먹구름 아래 묵직했다.
출발선에 선 재형은 떨리는 손으로 져지를 여미고,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그 앞에 선 석대장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오늘은 완주가 목표가 아니다.
우린 이긴다. 윈드바이크, 그리고 주성을.”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비로소 전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첫 고개는 살둔재야. 평균 경사 12%. 짧지만 진짜 지옥이야. 여기서 힘 너무 쓰면 뒤는 없어. 정상 근처에서는 자전거 내려서 끌바해. 근전환을 해줘야 해. 쥐 나면… 그대로 끝이야.”


석대장이 앞으로 나섰다.

“우린 보급소 안 들어간다. 시간 낭비야. 회장님이랑 지원 씨가 중간중간 따로 보급해 줄 거다. 페달은 멈추지 않는다. 코스는 구룡령, 조침령, 쓰리재, 한계령… 거기까진 영실이 앞에서 끌고 간다. 역구룡령부터는 내가 맡는다. 마지막 평지 20킬로, 재형아 네 차례야. 윈드바이크 팩 뒤에 붙여줄 테니까… 주성을 이겨라.”

말이 끝나자 모두의 입술이 굳었다. 그건 단순한 전략이 아니었다. 서로의 한계를 담보로 한, 전쟁 명령이었다.


출발 총성이 울렸다. 수천 대의 자전거에서 클릿이 끼워지는 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쇳소리가 물결처럼 번지며, 도로 위 공기가 진동했다.


살둔재 초입. 숨이 이미 가빠졌다. 거리는 짧지만 미친 듯이 가팔랐다.

“재형아, 여기서부터 끌바로 바꿔!”
영실의 목소리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다. 둘은 자전거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석대장이 뒤에서 외쳤다.
“걸으면서 몸과 다리를 풀어! 그래야 안장통과 근육 경련이 안 생겨. 정상에서 쉬지 말고 바로 다운힐 들어간다!”


구룡령 오르막 초입. 바람은 맞바람이었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재형의 이마엔 소금기 섞인 땀이 비처럼 흘렀다. 그때 길가에 회장과 지원이 있었다. 급히 물과 영양젤을 꺼내 영실 무리에게 전달했다.

보급품을 다 먹자, 석대장이 소리쳤다.
“구룡령 다운힐에서 리커버리를 해야 해. 그래야 조침령을 넘을 수 있어. 다리에 젖산이 쌓이면 안 돼, 조침령 준비해!”


조침령 평균 경사 10%. 거의 걷는 속도로 올라가야 했다. 숨은 칼날 같았고, 다리는 더 이상 자기 것이 아니었다. 석대장이 응원했다.
“재형, 지금 페이스 좋아. 조금만 버텨!”
영실은 재형 옆에서 숨을 고르며 웃었다.
“이제 진짜 설악의 문턱이야.”

그들은 고개를 올려다봤다. 정상에는 구름이 걸려 있었다. 그 구름을 뚫고 올라가야 했다. 재형은 작년에 메디오폰도에서 조침령을 경험해서인지 한결 수월하게 극복했다.


타바 일행은 이후 쓰리재와 한계령을 힘겹게 넘어 절반을 완주했다. 트럭에서 미리 준비한 스페셜 보급품을 제공했다. 죽과 황도, 탄산 음료수 등으로 에너지를 보충한 일행은 150킬로를 달려 공포의 역구룡령에 도착했다.


석대장이 재형의 어깨를 두드렸다.
“여기가 고비야. 대부분이 여기서 떨어져 나가. 이 구간만 넘기면 해낼 수 있어.”

그는 고개를 돌려 말했다.
“영실아, 여기서부터는 내가 끌 테니까, 넌 천천히 뒤에서 와.”

영실이 주먹을 높이 들었다.
“재형아, 끝까지 가. 나 대신, 꼭 주성을 이겨.”

석대장이 앞으로 나섰다.
“남은 건 우리 둘이다. 붙어, 재형아.”

그 말과 함께 두 사람은 역구룡령을 넘어, 역살둔고개까지 밀어붙였다.


마지막 20킬로. 석대장은 끝내 재형을 윈드바이크 주성의 팩 후미에 붙였다.
“이제부터는 네 싸움이다.”
그 말을 남기고 그는 뒤로 물러났다.

“형!”
“이겨라, 재형아!”

재형은 이를 악물었다. 페달이 한 바퀴 돌 때마다 허벅지가 찢어지는 듯했다. 바람은 정면에서 불어왔고, 숨은 점점 가빠왔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주성의 팀은 강했다. 그들의 로테이션은 완벽했고, 틈이 없었다.

마지막 5킬로, 재형이 숨을 몰아쉬며 속으로 외쳤다.
'지금이다.'

그는 페달을 힘껏 밟았다. 순간, 바람이 갈라지며 그의 몸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주성이 이를 악물고 바로 따라붙었다.

“감히 날 이겨?”
그의 어깨가 재형의 몸을 세게 밀쳤다. 자전거가 휘청였지만, 재형은 버텼다. 핸들이 흔들리고,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긁었다.

“비켜, 주성!”
“약한 놈 주제에!”

두 사람의 바퀴가 부딪혔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남은 거리, 3킬로.
2킬로.
1킬로.
그리고 — 마지막 500미터.


도로는 열기로 들떠 있었다. 심장은 터질 듯 뛰었고, 다리는 이미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주성이 옆에서 비죽 웃었다.

“여기까지는 잘 따라왔네, 재형.”

주성의 바퀴가 반 뼘 정도 앞섰다.

'이대로 끝낼 순 없다.'

재형은 마지막 남은 힘으로 페달을 내리눌렀다. 몸 전체가 떨리고, 심장이 터지는 것 같았다.

.

그 순간
주성이 팔꿈치로 재형의 가슴을 밀쳤다.

“비켜, 패배자!”

재형의 핸들이 휘청였다. 자전거가 미끄러질 듯 흔들렸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균형을 잡았다.


눈앞의 결승선이 아스라하게 흔들렸다.

'지금 아니면, 다시는 없다.'

그는 기어를 최대로 올리고, 몸을 일으켜 댄싱을 시작했다. 온몸의 체중이 페달 위로 쏟아졌다.
숨이 끊어질 듯했지만, 주성의 뒷바퀴가 점점 가까워졌다.

마지막 10미터.
재형은 온몸을 던졌다.

두 대의 바퀴가 — 거의 동시에 결승선을 스쳤다.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사람들의 함성조차 먼 바람처럼 희미했다.

재형은 그대로 자전거와 함께 쓰러졌다. 아스팔트 위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몸은 부서진 듯했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결승선 앞에서 회장이 시계를 들여다보며 외쳤다.
“7시간 30분 11초… 완주다!”

지원은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눈물이 뺨을 따라 흘러내렸다.
“세상에… 해냈어요…”

주성은 옆에서 이를 갈며 침을 뱉었다.
“운이 좋았던 거야. 다음엔 어림없어.”

그러나 그의 얼굴엔 이미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기록은 — 단 1초 차이.
7시간 30분 12초였다.


결승선엔 회장과 지원만이 남아 있었다. 석대장과 영실은 아직 어딘가에서 달리고 있었다.
지원은 재형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물을 주었다.

“괜찮아요?”

재형은 힘겹게 눈을 떴다. 입술이 터져 있었고, 얼굴은 먼지와 땀에 뒤섞여 있었다.
“저… 이긴 건가요?”

지원은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겼어요. 정말 이겼어요.”


잠시 뒤, 영실과 석대장이 결승선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숨을 몰아쉬며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회장이 말했다.
“이겼네. 주성보다 앞섰어.”

영실이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구름 사이로 햇빛이 스며 나왔다. 그 빛이 조용히 재형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석대장이 다가와 영실의 어깨를 두드렸다. 둘은 쓰러져 있는 재형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셋은,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말없이, 뜨겁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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