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2년 후, 봄

늦은 봄 저녁, 미용실 유리창 너머로 노을빛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영실은 마지막 손님을 배웅하고, 문을 닫았다. 그 옆엔 여전히 환한 미소의 지원이 서 있었다.

“오늘은 걸어갈까요?”
“그래요. 이제 공기도 따뜻하네요.”


둘은 나란히 걸었다.

문을 잠그는 소리 뒤로, 골목의 벚꽃이 흩날렸다. 그때 저 멀리서 지원의 딸이 달려왔다.

“엄마!”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지원에게 안겼다. 그리고 영실을 바라보며 웃었다.
“아빠!”

영실은 잠시 놀란 듯 웃었다.

이젠 아이가 그를 ‘아빠’라 부르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 이름 속엔 가족의 온기가 담겨 있었다.


한편, 설악 그란폰도의 영웅이 된 재형은 이제 ‘로드 투어 코리아’라는 자전거 관광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의 라이딩 경력은 설악 그란폰도 우승, 동해 300 챌린지 1위, 백두대간 종주 기록 보유자 등 화려했다.
이 모든 타이틀은, 그가 다시 삶을 붙잡았다는 증거였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그의 이름을 검색했고, 국내 동호인들은 그의 투어 일정을 예약하려고 몇 달을 기다렸다.

“오늘은 어디 가요, 대표님?”
가이드들이 묻곤 했다. 그는 늘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은 강릉 쪽. 동해가 부르는 날이야.”

자전거 위의 그는 더 이상 어제의 재형이 아니었다. 이제는 자신이 선택한 길 위를 달리고 있었다.


반면, 주성은 빠르게 무너졌다. 새로운 투자에 실패했고, 언제나처럼 책임은 남에게 돌렸다.

그 옆에 있던 재형의 전 아내는 고깃집에서도 쫓겨났다. 주성은 더 젊은 여자를 찾아 떠났고, 그녀는 한동안 그의 뒤를 쫓다 결국 버려졌다.

그때서야 그녀는 알았다.

자신이 사랑했던 건 주성이 아니라, 그를 통해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마음이었다는 걸.


어느 평일 오후, 재형이 퇴근길에 자전거를 세웠다. 앞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돌아보니, 그녀가 있었다.
손에는 장바구니가 들려 있었고, 얼굴에는 피로와 어색한 미소가 함께 묻어 있었다.

“오랜만이네.”
재형은 짧게 인사했다.


그녀가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애들 생각해서 다시 같이 살면 안 될까? 이젠 나도 후회돼.”

재형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이젠 늦었어. 애들도 잘 크고, 나도 이제 내 인생을 살고 있어. 양육비는 필요하면 더 줄게.”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단호했다. 그 안에는 미련도, 분노도 없었다. 다만, 긴 시간을 견뎌낸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평온함이 있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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